정부가 공적자금의 운용과 회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또 다시 새로운 "간판"을 내걸었다. 재정경제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금융감독원 부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국세청 및 관세청 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 참여하는 "유관기관협의회"와 실무자급으로 구성되는 "합동조사단"이 그것. 지난 29일 공적자금 특별감사 보고서가 공개된 뒤 공적자금 운용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지자 일종의 쇄신책으로 급조해 발표했다. 이같은 정부 대책은 그러나 "새 문제엔 새 간판"이라는 민심달래기용 해법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적자금 운용과 회수체계를 개선한다는 명분 아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구성한 게 불과 9개월 전의 일이다. 비슷한 일을 놓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인 만큼 신뢰성도 의심받고 있다. 어떻든 정부가 새로운 기관을 공식 발족시킨 것을 계기로 공적자금과 관련된 제도적 개선책이나 부실기업주에 대한 재산추적 등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특히 정부는 감사원 지적을 토대로 공적자금 운용의 전 과정에 대해 법·제도·행정적인 쇄신책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신용협동조합에 대한 예금보험제도의 적용 여부나 공적자금 손실규모 확정시기 등 민감한 쟁점들의 향방이 주목된다. ◇당장의 쟁점=감사원이 개선을 요구한 각종 공적자금 관련 제도들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감사원은 신용협동조합을 예금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권고했고 은행 증권회사 등에 예금우선변제권 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우선변제권제도 도입은 큰 어려움 없이 법제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신협 문제는 두고두고 논란을 거듭할 전망이다. 예금보험제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대대적인 고객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협조합의 저항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대선정국을 앞두고 정치권은 신협조합원들의 편에 설 공산이 크다. 이런 사정을 의식, 정부는 '중간지점'에서의 타협을 고려하고 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0일 신협을 예금보호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냐는 질문에 "원칙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급속하게 하면 자금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으므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협 출자금과 예금 중 출자금만 예금보호대상에서 제외하고 예금은 계속 보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내년 상반기까지의 숙제=지금까지 투입한 공적자금 1백50여조원 중에서 과연 얼마가 '회수불능'상태인지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대가로 받은 출자주식의 가격변동에 따라 손실이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다. 잠정적으로라도 손실금액을 추정해야 정부 재정에서 조금씩이나마 손실을 메워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몇년 후 수십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한꺼번에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손실금액을 추산하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그러나 추정손실 금액을 둘러싸고 여야간은 물론 학계와 국내외 금융계 등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또 이 논란은 매년 만기도래하는 공적자금 채권 중 과연 어느 정도를 국채로 교환해야 할 것인지,다시 말해 정부 재정에서 얼마 만큼을 떠안을지에 대한 시비로 확대되게 마련이다. 정부 보유 주식 매각시기도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하반기부터 매각하기로 합의한 바 있지만 정부는 "가능하면 그 전에라도 판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침체될 경우 이같은 약속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선 헐값에라도 빨리 파는 것이 좋은지,아니면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유리한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