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두가지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래 갖고 있던 직업에 싫증을 느껴 새로운 일을 찾은 사람에서부터 금전적인 이유로 부업삼아 다른 일을 시작한 사람까지 "두 얼굴의 사나이"들의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직업관의 변화와 함께 이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웹에이전시 업체 이노다임에서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이용현(35)씨는 연예기획사인 뮤직핸드에서 연예인 프로모터를 겸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졸업 직후 우연히 연예인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그러다가 1998년 벤처열풍이 거세졌을 때 한 연예인의 소개로 IT업체에 들어가 홍보일을 시작했다. 그가 두 개의 직업을 가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운 벤처기업에 일하면서 고기집을 경영했다. 금전적인 것도 문제였지만 남는 시간을 활용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년 정도 식당을 한 뒤 그는 연예인 매니지먼트일을 다시 시작했다. 요즘엔 신인 남성 그룹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씨는 "동시에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 게 말 같이 쉽지만은 않다"며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피로도 잊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자신의 전공인 미술을 소재로 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다. 한 외국계 전기기기회사에서 기술영업 과장을 맡고 있는 Y씨(37)는 얼마전 와인 전문 회사를 열었다. 출장차 유럽을 드나들면서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중앙대에서 포도주 전문가 과정을 이수했다. 처음엔 취미삼아 했지만 내친 김에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포도주를 수입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K씨(32) 또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Y씨는 "즐기면서 평생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을 결심했다"며 "전혀 상반된 두 일을 하는게 조금 버겁지만 어느 하나도 관둘 생각은 없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한 정수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L씨(38)는 근무 시간이 끝나면 목욕탕집 주인이 된다. L씨가 목욕탕을 시작한 것은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4년전의 경험 때문이다. 의류업체에 다니고 있던 그는 IMF 외환 위기 때문에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L씨는 이후 다른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또 다시 직업을 잃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 "안전장치"를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에다 은행빚까지 지면서 서울 잠실에다 목욕탕을 열었다. 동남아 등지에서 보석 수출입도 같이 했지만 최근에는 목욕탕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목욕탕을 착실히 해 나가면서 은행빚도 많이 갚았다"며 "당장 무슨 일이 있어도 먹고 살 길이 있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