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수산보조금 문제는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만 밀어붙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한국이 농업국가입니까. 창피해서 (다른 나라 협상단에게) 다른 얘기를 못꺼내겠어요. 농업을 지키려다 더 큰 것들을 다 놓치려는지, 참..." 지난 11일 오후 8시 카타르 도하의 한 한국식당. 당시 제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참석한 정부 대표단 관계자들이 제각각 상반된 목소리를 높였다. 뉴라운드 출범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대표단 내의 이견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듯했다. 최대 통상 현안을 눈앞에 두고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까지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부처간 알력과 이해대립은 그동안 정부의 통상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지난 98년초 행정조직개편을 단행,각 부처별로 자체 통상기능을 갖게 하면서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에 이를 조정.총괄하는 대외 사령탑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통상교섭본부가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9년 12월 개시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대표적인 예다. 이 협상은 양국 정상간의 적극적인 의지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시장 개방을 둘러싼 농림부와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간의 이견으로 결국 좌초되다시피 했다. 내년 1월 협상을 재개키로 했지만 타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98년 출범했을 때보다 전문성도 현저히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각 부처에서 통상 전문인력 43명이 전보 발령받았지만 현재는 10명도 남지 않았다. 대신 통상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옛 외무부 출신 인사들이 주요 보직을 꿰차고 앉았다. ◇ 통상조직 뜯어고쳐라 =통상교섭본부는 출범 4년새 과거의 통상 전문인력을 내보내고 옛 외무부 공무원의 자리를 보존해 주는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직업외교관들이 통상보직을 맡다보니 통상문제가 불거질 경우에도 외교적으로 타협하려든다는 따가운 비판이 나온다. 다른 경제 부처의 통상 전문인력과 이견조율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협상을 코앞에 두고 통상교섭본부와 각 부처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일쑤다. 상대방과 제대로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 통상전문가 양성하라 =공무원 인사제도가 통상 전문인력의 양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통상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정부가 실시중인 공무원 순환보직제가 그것. 이로 인해 오랜 현장경험을 쌓아야 하는 통상분야에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는 얘기다. 외교통상부의 서기관급 이상 통상 인력은 90여명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 본부와 현지 공관을 3년 단위로 옮겨 다니는 탓에 전문성을 기르기가 쉽지 않다. 일반 경제 부처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통상교섭본부 출범 전에 통상기능을 맡았던 산업자원부의 경우 현재 40여명의 통상 인력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은 통상 분쟁이 발생하면 실무 차원에서 지원역할을 맡게 되는데 근무기간이 고작 1∼2년에 불과하다. 지난 99년 한.일 어업협정 실무협상은 통상 인력 부족이 얼마나 아픈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저린 교훈을 준 사례다. 당시 일본에선 2백여명의 통상 전문가가 10일간 합숙까지 해가며 협상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정부 대표단은 협상개요만 겨우 숙지한채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승부는 양국 대표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이미 나 있었던 셈이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