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업체 등 국내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싼 값에 매입한 일부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횡포'로 회생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채권의 조기 회수를 위해 정상 가동 중인 공장을 경매에 부치거나 법정관리 인가에 동의해 주는 조건으로 비싼 값에 채권을 되사가라고 압박하고 있다. 18일 법조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법정관리에서 졸업한 신호스틸은 미국계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가 부실채권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캠스(KAMS)유동화전문회사를 상대로 13일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이 소송은 캠스가 지난 8월 "신호스틸이 계획대로 빚을 갚지 않아 채권 전액을 미리 회수하겠다"며 법원에 공장 경매를 신청한 것에 대한 '맞불작전'이다. 신호스틸 관계자는 이날 "멀쩡한 공장을 도대체 경매 물건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며 "우리처럼 법정관리 중이거나 법정관리를 갓 졸업한 기업들 중에는 외국계 투자회사 때문에 고통을 받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법정관리 인가를 앞두고 있는 고려산업개발은 이 회사의 담보채권 40% 가량을 보유한 리만브라더스와 서버러스로부터 법정관리 계획안에 대한 동의를 얻는 대신에 헐값에 매입한 채권을 턱없이 높은 값으로 되사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산은 이들의 반대로 당초 지난 9월에 열려고 했던 채권자 집회를 20일로 연기하는 등 회생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앞서 태화쇼핑도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설립한 TCM코리아와 모파소유동화전문회사가 채무 탕감에 반대하는 바람에 지난 8월 부산지법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회사가 부실채권 매입을 통해 영향력 있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채권을 확보한 법정관리 및 화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 등이 상당수 있어 이같은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