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서 막후 의견절충을 통해 대세를 이끌었던 일명 '그린룸(Green Room)회의'가 이번 도하회의에서는 협상 4일째인 12일 오전 현재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대표단 관계자는 12일 "이번 도하에서는 그린룸 회의라고 부를 만한 회의가 아직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는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11일 오후 11시에 주요 3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이크 무어 WTO사무총장이 주재하는 중간점검 회의가 열려 그린룸 회의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논의내용이 그린룸의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평가다.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이에 대해 "그동안의 논의내용에 대해 점검하고 앞으로 유연성을 갖고 임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주요국 중감점검회의일 뿐 그린룸회의라고는 부르지는 않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그린룸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은 개도국의 목소리 때문이라는 것. 원래 그림룸 회의의 특성상 이해당사자 가운데 20∼30개 핵심 국가의 '대표선수'끼리 모여 '대세'를 결정하고 이는 곧 거스르기 힘든 흐름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밀실회의'가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즉, 도하회의에서는 개도국의 목소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커진 만큼 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라도 그린룸 모임을 자제하자는 기류가 WTO 수뇌부 및 주요국 사이에 형성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는 지난 10일부터 본격 시작된 6개 의제별 그룹회의가 큰 흐름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게 참가국들의 평가다. 그룹별 의제에 중립적인 국가의 수석대표가 의장을 맡아 회의진행을 돕는 동시에 각국의 입장발표에서 이해가 엇갈리는 몇개국가 대표를 각각 개별적으로 면담해조율을 시도하는 방법인 셈이다. 이런 개별 면담은 의장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최대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돼 일종의 '고해성사' 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반덤핑협정 개정문제를 다루는 규범 분야 소그룹에서도 의장인 남아공의 일렉 어윈 장관이 입장이 맞서고 있는 한국-일본-칠레 3개국과 미국 대표를 각각 불러입장을 들은 뒤 문안조율 등 절충을 시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관계자는 "막판에 대타협을 위해 무어 사무총장이 주재하는 그린룸 회의가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그린룸회의 형식의 모임이 열리더라도 '그린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를 꺼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림룸 회의는 스위스 제네바 WTO 사무총장실 바로 옆에 있는 소회의실 내부 색상에서 따온 말로, 사무총장이 날카로운 이해대립을 보이는 국가 등 핵심국가를 그린룸으로 불러 절충을 이끌어내는 회의형태를 말한다. (도하=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