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상태가 아주 나쁘지는 않다. 예상대로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지만 우려했던 것만큼 침체의 골이 깊지는 않았다. 미 상무부는 미국 경제가 3.4분기(7-9월)에 마이너스 0.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지난 93년 1.4분기(마이너스 0.1%)후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그러나 예상치인 마이너스 1%에 비하면 괜찮은 성적이다. 이 때문에 마이너스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날 미국 주가는 강보합세를 보이고 달러가치도 올랐다. 덩달아 유럽 주가도 오름세를 탔다. ◇ 마이너스 0.4% 성장률 의미 =미 경제가 침체의 문턱에 들어섰다. 하지만 극심한 침체는 아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 0.4%로 나오자 미 경제전문가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비록 역(逆)성장이긴 하나 예상치(마이너스 1%)보다는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미키 레비는 "경제가 극심한(severe) 침체가 아닌 완만한(mild) 침체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던 소비 지출이 소폭이나마 1.2% 증가한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9.11 테러사태 직후 약 1주일간 증시가 문을 닫는 등 미 경제활동이 사실상 1주일동안이나 멈춘 상황에서 소비가 이나마 늘었다는 것은 미국 경제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의 신규 투자는 11.9% 격감, 마이너스 성장률의 최대 요인이 됐다. 기업설비투자 감소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3.4분기 성장률은 시장에서도 좋게 받아들였다. 성장률 발표 직전까지 떨어지던 주가는 오름세로 반전, 나스닥지수의 경우 1.4% 오른 상태로 마감됐다. 다우지수는 비록 장 막판에 오름세가 꺾였지만 성장률 발표 직후에는 급등했다. 달러화 가치는 엔화에 대해 달러당 1백22.08엔에서 1백22.44엔으로 올랐다. 이날 나온 성장률은 잠정치로 앞으로 두차례 수정돼 오는 12월말 최종 확정치가 나온다. 확정치는 잠정치보다는 나쁘게 나오는게 보통이나 당초 예상된 마이너스 1%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 향후 미 경제 전망은 =전문가들은 4.4분기(10~12월)에 경제가 좀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루이스는 4.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1%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들어 미 경제의 약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줄고 있는 탓이다. 지난 10월 이후 탄저병 공포가 확산돼 경기활동이 더욱 위축되고 대규모 감원사태로 실업률은 오르고 있다. 소비자 신뢰지수도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일본과 유로존(유로화 도입 국가들)보다 먼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이 가장 강력한 경기회복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아홉번이나 금리를 내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또 금리 인하를 준비하고 있다. 이달 6일 금리정책 회의에서 금리를 0.5%포인트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FRB는 올들어 금리를 모두 4.5%포인트나 내리게 된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 인하폭의 3~4배다. 대규모 경기부양책도 곧 시행된다. 부시 행정부가 의회에 송부한 경기부양책은 지난달말 하원에서 1천억달러 규모로 통과돼 현재 상원에 올라가 있다. 이날 성장률 발표 후 부시 대통령은 의회측에 경기부양책을 11월 안에 승인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부양책이 이달중 의회에서 마무리돼 시행에 들어가면 올 연말부터는 일부에서나마 경기회복 조짐들이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어 내년 2.4분기에는 대부분의 경기지표들이 좋아지면서 회복세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웰스파고은행의 손성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하반기쯤 3%대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월가에서 가장 정확한 성장률 예측가로 유명하다. 이정훈 전문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