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거라곤 4천억원이 넘는 매출손실과 영업망 붕괴 뿐입니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요, 그런게 있기나 한 겁니까. 파업이 풀려 서로 얘기가 되는가 싶었는데 징계해고자 복직시켜 달라, 협상타결 축하금 달라, 노조발전기금 내놓아라. 끝이 없어요. 차라리 공장문을 닫는게 속편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6월12일부터 9월2일까지 장기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던 태광산업 울산공장의 한 관계자는 파업이 끝났지만 후유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전했다. 제품가격 하락 등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상황의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추진했다가 이 회사는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하고 비용만 엄청나게 지불했다. 우리의 노사관계는 극과 극을 달리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장이 형성될 틈도 없었다. 노사가 똘똘 뭉쳐도 해외업체들과 경쟁하기 힘든 마당에 국내 기업들은 노사문제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거렸다. 우리나라 노사관계 국제경쟁력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해마다 실시하는 세계 노사관계 국제경쟁력 추이를 보면 도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97년 조사대상 46개국중 41위에서 올해는 49개국중 46위로 내려앉았다. 우리의 경쟁국인 대만이 20위에서 15위로, 싱가포르가 6위에서 1위로 뛰어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악성 노사분규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만 갉아먹는게 아니다.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기업의 철수를 자극하거나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의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한다. 야노 마사히데 서울재팬클럽 회장은 지난 7월 당시 김호진 노동부장관과 가진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앞으로 한국에서 노사분규가 계속되면 외국기업들은 중국 등 제3국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집단 이기주의를 앞세운 일부 노조의 불법파업과 엄정하지 못한 정부의 법 집행, 성실한 대화를 기피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해온 사측의 무리한 대응이 청산되지 않은 결과다. 특히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노동정책으로 노사 양측의 신뢰를 모두 잃어 이제는 중재자로서의 역할마저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 상반기 20여일간의 공장가동 중단으로 이어졌던 여천NCC 파업과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여천NCC 노조는 명백히 법을 어겼는데 정부는 공정한 법집행을 주저해 왔다"며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가 파업의 불법성에만 주목하지 파업을 초래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처벌을 내린 적은 거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손발 안맞는 정부 부처간의 구조조정 정책과 노동정책은 기업들로부터 귀중한 경영시간을 빼앗고 추가 비용까지 부담시키고 있다. 지난 99년7월 설립된 빅딜1호 기업, 한국철도차량(주). 중복투자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대우중공업 현대모비스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부문을 떼어내 만들어낸 통합법인에서는 대우 현대 한진 등 3개 노조가 각각 독립노조로 활동하고 있다. 철도차량 관계자는 "한지붕 아래 세 노조가 있다보니 각각 회사측과 임금협상을 해야 하고 노조도 서로 눈치를 보며 노.노 임금협상을 벌어야 하는 구조"라고 전했다. 반대로 LGCI LG화학 LG생활건강 등 3개 회사로 분할된 종전 LG화학의 노조는 노조를 분할하지 않고 통합된 상태에서 운영할테니 이를 받아들이라며 농성을 벌였다. 산자부는 이런 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동법 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촉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잡 셰어링(job sharing:일자리 나누기) 등의 방식으로 일자리는 줄이지 말라고 은근히 강요한다. 인력감축 없는 구조조정이 과연 가능한가. 경기가 나빠지면 외국기업들은 일거에 수만명씩 감원하며 몸집을 줄인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지지 않고는 이들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 [ 특별취재팀=이희주 산업부장(팀장) 김상철 손희식 허원순 김성택 조일훈 김홍열 이심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