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에게 걱정과 염려만을 끼쳐드린 채 낯선 이국의 하늘 밑에서 비탄과 회한,그리고 투병(鬪病)의 세월을 걸어온지 어언 2년여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죽기보다 사는 것이 더욱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며 살아온 시간들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많은 고통과 혼란이 초래된 점 국민들 앞에 엎드려 사죄한들 가셔지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절망의 가슴은 또 다시 송구스러움에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정 부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서 대우사태와 관련하여 진실을 찾아주시기 위하여 애써주시는 점,너무도 큰 은혜로 생각하며 격려의 전언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경영진과 직원들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저 하나만 빠져 나와 있는 현실은 정말 가슴을 찢는 자괴(自愧)와 고통(苦痛)으로 저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해체라는 믿기지 않는 일을 당해야 했던 저 개인의 참담함과 분노는 차치(且置)하더라도, 오로지 수출한국의 기치 하나로 청춘을 불사르며 피와 땀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묵묵히 소임을 다해온 이들이 희대의 범법자로 매도되며 영어(囹圄)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제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참으로 번민(煩悶)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우의 공과(功過)가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 오로지 매도 일변도로 모든 추악한 비난만이 저를 위시한 대우 임직원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 이젠 슬프기만 할 따름입니다. 내가 국제적 사기한(國際的 詐欺漢)이고 대우그룹이 범죄집단이었다면 어떻게 지금도 대우가 만든 마티즈 자동차가 로마 시내를 가장 많이 질주하고 있고, 전세계의 바다 위를 대우가 만든 수백척의 배들이 항해를 하고 있겠으며, 대우가 건설한 아프리카, 중동의 그 많은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질주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대우의 성쇠(盛衰)에 관한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며 진실이 영구히 덮여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오늘 참을 수 없는 감정(感情)을 드러내기보다 절제된 행동(行動)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며 기다리고자 합니다. '번영(繁榮)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逆境)은 친구를 시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부장님과 한국경제의 모든 분들이 이 고난의 시절에 덮여진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시며 보여주신 염려와 도움을 참된 우정으로 깊이 새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우 해체의 진실을 찾으려는 여러분들의 노력이 제 개인의 명예나 과거(過去) 따위의 복원에 도움을 주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미 제 자신에 관한 모든 미련이나 원망은 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결과는 비록 참담하였지만, 저와 수많은 대우가족들은 한평생 '국가와 경제의 발전'이라는 일념 이외의 어떠한 사심(私心)도 탐하지 않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혹독한 비난과 매도(罵倒)의 세월을 지나면서조차 나라를 생각하는 저와 대우가족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노고가 우리 경제에 자성(自省)과 경종(警鐘)을 울리며 새로운 기회와 활력을 찾는 출발점으로 기여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난관과 장애 속에서라도 더욱 객관(客觀)과 균형(均衡)의 시각을 견지해 주시기를 주제넘게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한국경제신문사의 큰 발전을 기원 드립니다. 김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