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전쟁과 세계화 (1) '테러충격, 혼미한 세계경제' ]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미국 테러 충격으로 뒤뚱거리고 있다. 테러 전쟁의 파장은 글로벌경제 시스템에 제동을 걸고 있다.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자금줄 추적, 공항 항만의 검색 강화 등 전쟁의 파문은 끝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무얼 헌팅턴이나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은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은 세계사의 갈림길이다. 세계경제의 주변부인 한국으로선 새 흐름을 슬기롭게 타느냐 못타느냐에 따라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반대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무역과 투자 자유화 확대의 혜택을 입으며 성장해온 한국경제는 이미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 7~8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감소한 수출은 9월 16.%, 이달들어 1~15일간 27.5% 줄었다. 9개월 연속 감소추세다. 산업계에도 파고가 높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선도해온 IT(정보통신) 등 신경제의 타격이 커지면서 철강 자동차 등 전통산업을 둘러싼 국가간 마찰(통상분쟁)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세계화를 이끌어온 경제대국들은 최근 중국 상하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뉴라운드의 차질없는 추진을 다짐하는 등 충격완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세계경제 불안이 빨리 진정될지, 혼미한 양상으로 치달을지 아직 예단하긴 이르다. 그린스펀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같은 전문가들도 좀더 두고보자는 조심스런 자세다. ◇ 세계경제에 악영향 =미국의 테러전쟁으로 세계화가 주춤거리는 모습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볼수 있다. 우선 들수 있는게 세계 교역의 위축이다. 한국무역협회 경제조사팀 김도형 연구원은 "세계 교역은 우루과이라운드 출범으로 자유화 폭이 확대된 이후 꾸준히 늘어왔지만 이번 테러로 원점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테러위협에 대비해 통관절차가 아주 엄격해지고 보험료와 운송료도 크게 오른 데다 소비심리가 세계적으로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강력한 테러대비 후속대책으로 사람과 상품, 돈의 국제간 이동이 상당히 까다로워지면서 '생산요소 이동의 자유화'를 모토로 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직접적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은 테러단체의 자산동결조치를 취한데 이어 테러자금의 국내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입법화를 추진중이며 공항 항만 등을 통한 입국자들에 대해 엄격한 통관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안덕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패권주의는 더욱 거세져 통상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올해 30개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 1982년 이후 최저인 1%에 그치고 내년에는 1.2%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경제성장률을 올해 3.2%에서 2.6%로, 내년 3.9%에서 3.5%로 각각 하향조정했다. ◇ 국제분업도 주춤 =그동안 급속히 진행돼온 국제분업도 주춤거리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이번 테러사건을 교훈으로 생산기지를 다른 나라로 옮기는 세계화 전략을 수정할 움직임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제조업의 세계화 흐름은 기업들이 중요부품은 국내에서 조달하는 방향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국제 교역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잠재테러에 대한 비용이 늘고 있으며 반세계화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세계화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테러가 세계화라는 멀쩡한 수레바퀴에 재를 뿌리는 꼴이 됐다"며 "기업인의 경영마인드를 저하시키고 세계 경제에 새로운 비용을 증대시켰다"고 분석했다. ◇ WTO 각료회의 험로 =APEC 정상회담은 내달 9일 중동 카타르 도하에서 개막될 예정인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뉴라운드를 올해안에 출범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각 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달라 뉴라운드가 연내 출범할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강문성 박사는 "농업.서비스 교역확대, 환경및 노동의 무역 연계방안, 반덤핑 등에 대해 각 국간 이해관계가 달라 협상이 완료되기까지는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 ------------------------------------------------------------------ [ 기획취재팀 강현철.조일훈 기자 hck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