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3일 새벽(한국시간)미 수입철강제품에 대해 무더기 산업피해 판정을 내림에 따라 한국, 일본 등 철강수출국과 미국간의 `철강전쟁'이 본격화됐다. ITC는 철강수출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철강업계와 노동계, 의회의 압력을 전폭적으로 수용, 열연, 냉연코일 등 대다수 판재류에 대해 통상법 201조(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사전단계인 산업피해 판정을 내렸다. 한국철강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자국 고로업체들의 입장을 반영해 일방적 판정을 내렸다"며 "조만간 확정될 구제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불일치할 경우 유럽연합(EU), 일본과 공조해 WTO 제소 등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ITC는 오는 11월 15일 2단계로 이번에 피해판정을 받은 품목에 대해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최종 공청회를 가진뒤 12월19일 구제조치 건의안을 확정해 대통령에게보고하며, 상황 변동이 없는한 대통령은 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여부와 내용을 최종결정해 내년 2월18일까지 공표한다. ◇ 경과 25년래 최악의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 업계와 노동계가 사활을 건 로비를벌였기 때문에 ITC의 이번 산업피해 판정은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 산업화의 상징적 기업으로 미국 3위 철강업체인 베들레헴스틸이 최근 연방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을 비롯, 97년 이후 26개 철강회사가 파산보호를신청했고 이 가운데 23개사가 파산했다. 실직자만 2만3천명에 달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미국 업계와 노동계는 지난 6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이번 조사에서 미국 철강산업의 위기는 내부 문제가 아니라 정부 보조금과 불공적 무역관행에 편승한 수입철강제품 때문이라며 60여명이 넘는 상하원 의원을 동원, 사활을 건전방위 로비를 벌였다. ◇전망 구체적으로 어떤 수입제한조치가 취해질지는 ITC의 구제조치 건의안이 마련될때까지 두고봐야 하지만 전례에 비추어 미국은 일단 과거 수출실적을 고려해 모든 국가에 대해 일률적으로 수입물량규제(쿼터제)를 적용하고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고율의 할당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ITC가 이번에 조사를 벌인 제품은 512개 품목으로 수입철강제품의 95%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한국산 철강제품의 대미수출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예상된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미 행정부가 업계의 요구대로 97년 이전 3년의 실적을 기준으로 수입쿼터를 채택할 경우 대미 철강수출은 작년보다 100만t(42%)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대미 수출물량이 많은 판재류 부문에서 전기강판을 제외한 전 품목이 피해 판정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열연코일, 냉연강판, 도금강판, 후판, 석도강판 등 5개 품목은 ITC 위원 전원이찬성한 만장일치(6대0)로 산업피해 판정이 내려져 강력한 수입제한조치가 예고되고있다. 석도강판, 봉강 및 탄소용접강관은 각각 3대3으로 피해 판정이 났다. 특히 포항제철이 미국 US 스틸과의 합작법인인 UPI에 중간소재로 공급하는 열연코일 70만~80만t이 수입제한조치의 대상이 돼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반면 와이어로프, 형강, 스테인리스 강관, 유정용 강관 등 17개품목은 무피해판정이 내려져 최악의 국면은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대응방향 국내 업계는 내년 2월 수입제한조치가 최종 발동되는 순간까지 통상교섭본부,산업자원부 등과 긴밀히 협의해 한국측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할 계획이다. 우선 철강재 수입량중 60%가 반덤핑등 각종 수입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철강회사들이 연쇄파산하고 있는 것은 수입제품 때문이 아니라 과다한 퇴직자 연금지급, 의료보험 및 복지후생비용 등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 경기침체 및 경쟁격화에 따른 시장 점유율 감소 때문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계획이다. 특히 올해 들어 1~8월중 미국의 철강제품 수입량이 작년 동기 대비 30% 감소하는 등 전 철강제품의 수입이 98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를 보이고 있는데도 수입급증으로 인해 산업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잘못된 판정임을 주장해 피해를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논리적 대응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EU, 일본 등과 연대해WTO에 제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국내 업계의 입장이다. 미국이 구제조치의 일환으로 전 세계 철강회사들이 동시 참여하는 다자간 철강협정을 추진할 경우에는 국내 업계도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창섭기자 lc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