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리인하 무용론에 대한 반박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보고서 내용은 주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금리인하가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금리정책이 제 효과를 못내는 것은 '여건'이 미흡한 탓일 뿐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게 한은의 금리정책이 적절치 못한 탓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금리인하 효과가 6∼9개월뒤 나타난다던 한은이 스스로 더 조바심을 내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전철환 한은 총재도 요즘들어 부쩍 "경기 확장기엔 금리 인상의 경기 진정 효과가 뚜렷하지만 수축기에는 금리 인하보다 재정 확대가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 한은의 보고서들 =한은은 15일 조사통계월보 9월호에 게재한 '주요국의 금리정책 운용경험과 시사점'에서 "부실 기업의 신속한 퇴출 등 구조조정 기반이 확충되고 재정정책이 병행돼야 금리정책이 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미국 영국 호주가 지난 90∼93년 경기침체기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춰 94년이후 장기간 경기호황과 물가안정을 달성했던 것도 이런 기반에서 가능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 이에 앞서 한은은 지난달 말 '구조조정과 통화정책의 관계'라는 자료에서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추진돼야 인플레 유발없이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사통계월보 8월호에서 '최근 재정운영이 경기에 미친 영향과 정책과제'란 보고서는 작년 4.4분기 이후 경기가 급속히 둔화된 데는 정부의 재정 긴축도 한몫했다고 비판했다. ◇ '네 탓이오' =한은은 지난 7∼9월 석달 연속 콜금리를 내릴 때마다 정부의 재정정책과 구조조정을 강조해 왔다. 전 총재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선 "재정정책은 경기부양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고 재정운용 면에서도 확대 지출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리는 내릴 만큼 내렸으니 이젠 재정에서 대책을 세우라는 주문이었다. 반면 재경부는 '금리인하 먼저'를 촉구하며 '건전 재정'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형편이다. 관계자는 "한은 소관인 물가안정도 긴요하지만 재정에 구멍을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은의 재정확대 촉구에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와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서로 상대방의 정책수단부터 총동원하라고 촉구하는 꼴이다. 내년 중반부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책임 떠넘기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