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회사인 A사는 지난해 1천3백64억원의 법인세를 내고도 공익사업 출연기금, 기부금, 협회지원비 등 이른바 준조세로 9백60억원을 부담했다. 영업이익(4천2백63억원)의 무려 22.5%가 '세금 아닌 세금'으로 나갔다. L사도 올 상반기에만 경상이익(3백5억원)의 7.5%에 해당하는 23억1천8백만원을 장애인 고용부담금, 국민연금 등 준조세로 납부했다. 준조세 중에서도 비중이 큰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교통세 등 각종 명목으로 부과되는 목적세를 계산하지 않은게 그 정도다. '준조세가 기업을 잡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준조세 문제는 심각하다. 준조세는 조세 외에 기업활동 과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공과금 부담금 분담금 기금출연금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을 말한다. 지난해 전경련이 99년 국내 주요기업 9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이 납부한 준조세는 7조3천16억원으로 집계됐다. 세금 납부액(7조3천3백24억원)과 맞먹는 규모로 한 회사가 부담하는 법정준조세만 평균 61억5천4백39만원, 여기에 각종 기부금과 성금, 사회보장성 부담금과 목적세를 포함한 총 준조세 부담은 평균 7백45억6백87만원에 달했다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준조세 부담이 이렇게 큰 이유는 준조세 항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존립의 필요성조차 모호한 개발부담금, 농지 및 산림전용 부담금에서부터 교통유발부담금과 과밀부담금, 학교용지 부담금, 하수도사용료 및 배출부과금, 환경개선부담금 등 이중부담 성격을 진 것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기업이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 돈이라면 기업도 이의를 달지 말고 내야 한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조항이 많다는 점이 문제다. 준조세 항목에는 대부분 '관련부처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따라 징수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근거가 애매한 준조세는 뇌물과 맞닿게 마련이다. 기업 스스로도 준조세를 로비자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 조사에서 한국의 경제불투명 지수가 35개국중 다섯번째로 높게 나온 것도 각종 기준이 이렇게 불명확한데 이유가 있다. 한국의 준조세는 이미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지난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은 각종 목적세가 재정수입의 20%에 달하며 조세제도의 중립성과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명목상 세금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세금 역할을 하는 각종 수수료 부과금 기부금 등 준조세가 많다'고 언급했다. PwC의 CEO인 제임스 J 시로 같은 이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국가투명도가 가장 높은 싱가포르에 비해 35%에 상당하는 추가적인 준조세를 부담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기업들은 비합리적인 준조세 부과를 줄여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만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정부는 준조세 정비방안을 마련키로 재계와 합의했다. 당시 기획예산처는 11개의 각종 부담금을 폐지, 기업부담을 2천2백27억원 가량 줄여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법안은 정작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 제출된 '부담금 관리기본법'은 6월 국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으나 본회의에 상정도 안된 채 묶여 있다. 신종익 전경련 규제조사본부장은 "기업이 납부한 준조세의 대부분이 특정사업이나 정부산하기관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세제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 특별취재팀 =이희주 산업부장(팀장) 박주병 손희식 김성택 김태완 김수언 이심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