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위기에서는 벗어났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한국경제의 실력을 인정하기엔 이르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지난해 9월 홍콩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은 자국내에서 통하는 기업은 많지만 세계적인 기업이 없다"며 한국이 경쟁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평가를 유보했다. 그는 그 뒤에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비슷한 지적을 했다. 세계 경제전쟁에서 다국적 기업의 공세를 막아줄 대기업이 취약하기 때문에 글로벌시대를 무탈하게 순항할 수있을지 미지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내기업과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다국적 기업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그의 얘기는 더욱 실감이 난다.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2백72억달러로 미국 IBM(8백84억달러)의 30%에도 못미친다. 석유메이저중 하나인 엑슨 모빌과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주)를 비교하면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엑슨 모빌이 2천2백84억달러의 매출에 1백77억달러의 이익을 낸데 비해 SK(주)의 매출은 1백11억달러, 순익은 1억달러에 불과했다. 국내에서는 내로라하는 대기업도 세계시장에 나서면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GE의 주식 40%만 있으면 국내 상장기업을 모두 사들일 수 있을 정도다.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 시대다. 우리 기업의 경쟁상대는 더이상 국내 기업이 아니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과 맞서 이겨야 살아남는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아프리카 등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경제전쟁의 포성이 울리고 있다. 국내시장도 자동차부품 종묘 제지 등 일부 산업은 이미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선진기업들은 그것도 모자라 초대형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동차 분야의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스슬러, 통신 분야의 AT&T와 TCI, 석유화학 분야의 엑슨과 모빌, 금융 분야의 씨티그룹과 트래블러스그룹, 컴퓨터 분야의 HP와 컴팩 등이 한 회사로 합쳐졌다. 과거의 인수.합병이 사업구조조정이나 수직계열화를 통한 생산효율의 제고가 목적이었다면 최근의 메가머저 바람은 시장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한다. 규모가 작더라도 기술력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는 적어도 국제무대에서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몸집을 키워 놓지 않으면 먹히는 시대가 됐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