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과 7월 파리에서 개최되는 오트 쿠튀르(최고급 맞춤복) 컬렉션. 세계적 톱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최대 패션행사다. 이 컬렉션에 발표되는 의상 가격은 20만 프랑(3천6백만원)이 넘는다. 이브닝 드레스는 60만 프랑(1억8백만원)수준이다. 컬렉션 기간이 되면 전세계 이목이 파리로 집중된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오트 쿠튀르 발표회가 패션쇼 수준을 넘어 전위예술가들의 행위예술을 방불케 한다. 이에따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참가 업체와 독립 디자이너들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 예산 규모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번 쇼를 여는데 드는 평균 비용은 5백만 프랑(9억원). 여성복은 최고 1천만 프랑(18억원)이 투입되기도 한다. 또한 명품 기업들의 스타급 인기 디자이너 스카웃 경쟁과 함께 디자이너들의 몸값도 천장부지로 뛰어 오르고 있다. 몇해전 존 갈리아노를 크리스티앙 디오르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한 LVMH그룹은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관해서는 아예 그에게 백지수표를 건네줄 정도다.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킬만한 독창적인 깜짝 쇼만 열어 준다면 비용이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내가 존 갈리아노에게 바라는 것은 멋진 옷이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아이디어"라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말처럼 오트 쿠튀르는 상품으로서의 옷보다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컨셉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의 이같은 투자경쟁은 오트 쿠튀르가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적자 사업이다. 오트 쿠튀르 고객은 전세계를 통틀어 2천명 선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이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은 2백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브랜드 파생상품 시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 시장규모는 지난 20년이래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명품 업체들의 매출액 90%는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와 티셔츠,액세서리,향수 등 브랜드 파생상품이 차지한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경우 향수 판매가 총매출액에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이른다. 따라서 오트 쿠튀르 패션쇼는 파생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전략이다. 즉 천재적 디자이너의 환상적 패션쇼를 통해 소비자로 하여금 상류사회의 명품을 소유하고픈 욕망을 일으켜 가격 접근이 가능한 파생상품 판매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특히 티셔츠의 경우,일반 제품에 비해 10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이 많다. 비록 쇼윈도의 정통 명품은 아니지만 그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선 큰 액수를 지불하지 않고서도 명품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기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르와의 경우,한벌에 1백만 프랑(1억8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맞춤 드레스를 만들면서 동시에 6천 프랑이면 구입할 수 있는 프레타 포르테를 판매한다. 이는 꼭 패션 업계뿐만 아니라 유명 보석업계도 마찬가지다. 카르티에는 파리 방돔 광장의 매장에서 80만 프랑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면서 백화점과 면세점을 통해 4백50프랑대의 선글래스를 팔고 있다. 그렇다고 파생상품 사업이 무조건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피에르 가르댕이다. 그는 수백개에 달하는 파생상품 라이센스 남발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아무 제품에나 자신의 브랜드를 붙임으로서 희소 가치를 잃게 되었으며 피에르 가르댕 브랜드는 대량 생산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파리=강혜구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