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을 조기에 집행해 경기를 부추기겠다는 진념 경제팀의 거시경제정책은 끝내 공수표가 됐다. 통합재정수지(정부의 수입-지출)가 대규모 흑자를 본 데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가 민간에 돈을 풀기는 커녕 오히려 빨아들여 경기 급랭을 부추겼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정부의 거듭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재정 흑자가 늘어나기만 한다는 점이다. 4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2001년 1∼8월 통합재정수지'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 흑자규모는 16조3천억원이었다. 상반기 13조원에서 두달이 지나는 사이 민간에 있던 자금 3조3천억원을 더 빨아들였다는 의미다. 특히 이 두달 동안 정부는 특별팀까지 만들어 재정집행 상황을 점검하고 조기 집행을 독려하는 등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던 터여서 현 경제팀의 정책 수행능력에 심각한 의문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 거꾸로 가는 재정정책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간한 '최근 재정운용이 경기에 미친 영향과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서 미숙한 재정 운용이 경기 둔화를 부채질했다는 실증적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재정은 △1998년 확장 △99년 중립 △2000년 긴축 후 확장 △2001년 1.4분기 긴축의 패턴을 보였다. 한은은 "올 1.4분기 통합재정수지 흑자가 12조3천억원에 달해 재정정책이 경기상황과 거꾸로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거꾸로 가는 재정정책'은 상반기 내내 계속됐고 지난 8월말까지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흑자 규모는 13조원이었고 1∼8월 흑자는 16조3천억원이었다. 한은 분석대로라면 재정정책은 6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난 1.4분기 긴축재정 운용은 최근(3.4분기) 경기침체의 큰 원인이 되고 있으며 8월말까지 계속된 재정운용 실패는 내년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정부의 낙관 =상황이 이런데도 재경부는 재정을 잘 운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경부는 올 1∼8월 흑자에 대해 "작년 1∼8월의 흑자(18조7천억원)에 비해 2조4천억원이 축소됐기 때문에 재정이 경기 확장에 적극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특히 세입세출 부문(일반.특별회계) 흑자는 6조4천억원이나 줄었는데 이는 재정자금 조기집행 노력의 성과"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비교 연도를 4년만에 대대적인 흑자를 낸 이례적인 해로 설정한 데서 나타난 오류라는 지적이다. 통합재정수지는 1997년 7조원, 98년 18조8천억원, 99년 13조1천억원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 6조5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비교 연도를 작년 대신 한은이 '중립' 기조로 분석한 99년으로 할 경우 올 1∼8월 통합재정수지는 99년 1∼8월(6조6천억원 적자)에 비해 22조9천억원이나 흑자를 냈다. ◇ 대책은 없나 =한국경제연구원은 "단기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경기조절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고용 창출이나 성장잠재력 확충에 도움을 주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대한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법인.소득세 인하 등 감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