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는 제4차 도하 각료회의개막을 한달여 앞두고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뉴라운드 출범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WTO의 142개 회원국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일반이사회와 개도국 이행문제 특별회의를 잇달아 열고 스튜어트 하빈슨 의장이 제시한 각료선언문 초안을 놓고 구체적인 토의를 벌였다. 권투에 비교하면 탐색전을 겸한 1라운드를 마친 상황이기 때문에 핵심 주도국들의 협상카드가 아직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반덤핑협정 개정과 농업협상이 초반 쟁점으로 부각됐다. 미국은 그동안 반덤핑 문제에 적극적인 반대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각료선언문 초안에 반덤핑이 협상의제로 포함된 것에 강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피너 알가이어 미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2일 저녁 회의에서 기존의 반덤핑및 상계관세 협정과 관련된 제반 문제들에 관한 검토작업을 한뒤 그 결과를 토대로2003년에 열리는 제5차 각료회의에서 이를 다룰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자는입장을 제시했다. 알가이어 부대표의 발언은 사실상 각료선언문 초안에서 반덤핑 문제를 협상의제에서 제외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미국이 협상단계에서 거론한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전략적인 고려가 담겨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으나 일단 미의회의부정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려는데 무게가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한 편이다. 그러나 일본과 칠레 등은 WTO 회원국중 상당수가 반덤핑협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고 이러한 견해가 각료선언문 초안에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의 기선제압 시도에 쐐기를 박았다. 한국도 3일오전 회의에서 정의용(鄭義溶)대사의 발언을 통해 "각료선언문 초안에 담겨진 반덤핑 문제에 관한 표현이 최저기대치에 못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따라서 초안의 내용을 희석시키려는 어떠한 제안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확고한 입장을 천명했다. 정 대사는 특히 당사국의 첨예한 이해가 걸려 있는 최대 의제중의 하나인 농업협상에 관한 선언문 초안이 확정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한국정부의 기본입장을 재천명했다. 미국이 앞서 짤막하지만 강력한 표현으로 "국내.수출보조금 감축 등 농업분야에서 만족할만한 협상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농산물 수출국모임인 케언즈그룹의 거센 도전에 정공법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사가 제시한 한국정부의 농업협상에 관한 기본입장은 5개항으로 요약된다. 첫째,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자체가 각국의 이해를 미묘하게 반영했으며 이러한 균형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UR협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처럼농업분야의 개혁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원칙에 의거해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의 내용과 구성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농업만 치중해서 세세히 열거하거나 또는 다른 협상분야에 비해 너무 간단하게 소홀히 다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셋째, 협상의 결과를 예단할 수 있는 표현이 들어 가서는 안된다는 `사전협상불가론'이다. 정 대사는 이러한 논리의 토대위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농업의 ` 비교역적 특성'이 반드시 인정돼야 하며 다른 협상의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협상이 이뤄지는 일괄타결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마이크 무어 사무총장과 하빈슨 일반이사회 의장 등 WTO 지도부는 늦어도이달말까지는 제4차 도하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의 핵심내용이 확정돼야 한다고 판단,회원국간 이해조정을 위해 일요일에도 공식.비공식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어서 뉴라운드 출범논의는 본격적인 협상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또한 각료회의를 앞두고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특정 현안별로 입장을 같이 하는동조회원국들간의 소그룹회의와, 상대방을 설득하고 막후에서 협상카드를 주고 받는극비회동도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키스 록크웰 WTO 대변인은 "협상의 패키지를 놓고 해당 의제간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진정한 협상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 oj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