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부진 속에서도 그동안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왔던 국내 소비마저 크게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적잖이 충격을 주고 있다.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내수마저 버텨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소득세의 대폭 감면을 들고 나왔다. 세금을 깎아주면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즉 가처분 소득이 증가함으로써 소비가 되살아나면서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 이것이 확대 재정정책이다. 정부가 확대 재정정책을 쓰면 재정적자가 발생하게 되는데 재정적자가 과연 소비의 증대로 이어질 것인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아더 C 피구는 정부가 적자보전을 위해 국채를 발행할 경우 국채를 보유하게 되는 가계는 자신의 부가 증대된 것으로 판단해 이를 근거로 소비를 늘린다고 보았다. 가계의 실질 부가 늘어나면 소비 역시 늘어난다는 피구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반박한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개인들은 언젠가 정부가 국채 상환을 위해 조세를 증대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당장의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세삭감에 따른 재정적자를 부채를 통해 조달할 경우 오늘의 조세삭감과 장래의 조세를 '같은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인데, 이같은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한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름을 따서 이를 리카디언 등가(Ricardian Equivalence)라고 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모든 가계가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이며 장기적인 안목에 따라 소비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그러나 리카디언 등가를 반대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이 대체로 정부의 재정확대정책의 이면을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매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소비생활에 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세삭감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전제는 세대간 이타주의다. 오늘 발행된 국채를 상환하는 것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되지만 장래에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이른바 '세대간 이타주의'로 마치 자신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적인 설득력이 떨어지며 부채를 통한 조세 삭감은 다음 세대를 희생해 현재의 소비를 증대시킨다는 것이 전통적 조세 삭감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 외에도 정부가 현재의 조세를 삭감하고 장래의 조세를 증대시킨다 해도 이는 우선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명료해 보이는 정책도 그 선택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아 보인다. <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 tsroh@maincc.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