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지난 1997년 도입한 '기술담보사업'을 금년 말로 그만둘 모양이다. 도입 당시에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다. 부동산담보 대출의 한계를 인식,중소ㆍ벤처기업의 특허 등 기술의 가치평가를 통한 기술금융을 발전시키고,기술거래 또한 촉진하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만두려는 것은 생각보다 성공률이 낮고 또 부실채권이 누적,손실률에 대한 책임추궁과 걱정이 앞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은행권으로 확산을 노렸던 기술담보사업은 모험적인 정책이었는지 몰라도 기술평가의 모델이나 인력이 취약한 현실의 벽을 느끼게 만든 꼴이 됐다. 따지고 보면 취약한 평가 인프라는 중기청이 자랑하는 1만개 벤처기업의 허상으로도 이어진다. 초기만 해도 벤처기업 지정기준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년에 2만개,2006년 4만개식의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새 기준이 추가됐다. 정부가 지정한 평가기관들이 벤처로 평가하면 벤처기업으로 지정되게 한 것 등이 그것이다. 결과는 벤처기업 수의 급증이었다. 이런 식으로 된 벤처기업이 지금은 과반수를 훨씬 넘길 정도다. 한마디로 '패자부활전 통과선수'가 이젠 '주류'가 됐다. 결과는 경기침체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일로 나타났다. 1만개라는 벤처기업 숫자의 화려함과는 달리 4개 업체 중 1개꼴이 매물로 나와 있지만 거래는 거의 없다. 1천개 벤처기업을 현장 조사한 중기청은 1백40여개 업체의 '벤처 지정'을 취소했다. 내용적 차이에 관계없이 '벤처기업'이라는 동일 시그널만 존재하면 어떻게 될까. 더욱 곪아터질 정보의 비대칭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잘못 평가된 벤처기업은 정작 정부의 주목이 필요한 신생ㆍ기술창업 기업에 돌아갈 자원을 갉아먹는다. 기존기업의 벤처기업 탈바꿈이 용이한 제도아래서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재경부는 또 다른 벤처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벤처투자 손실보전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수수료를 받는 대신 손실이 나면 일정부분 보전한다는 것으로서 일종의 보험이라면 보험이다. 하지만 이 역시 기술담보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반복할지 모른다. 평가 인프라가 기본적 전제라면 특히 그렇다. 시장이 사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험에까지 정부가 깊숙이 간여해야만 벤처가 되는 걸까. 인프라를 어떻게 확충할지,자원배분의 사각지대가 어디인지 등 어려운 때 일수록 정부는 근본으로 돌아가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