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9일 콜금리를 기습 인하한 것은 '자의반 타의반'식의 선택이었다. 경기부양과 금융완화의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금융시장의 심리적 안정에 더욱 비중을 뒀다. 저금리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는 마당이어서 한은 자체적으로는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각국이 일제히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중이어서 한은으로선 금리를 안내릴 명분을 찾기도 어려웠다. ◇ 불가피한 선택 =전철환 한은 총재는 "하루라도 빨리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미국 테러사태로 인한 금융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달리 선택이 없었다는 얘기다. 석달 연속해서 모두 1%포인트를 내릴 만큼 상황이 긴박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주들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과 홍콩 대만 뉴질랜드 등 11개국이 일제히 금리를 내렸다. 세계적인 금리인하 공조노력 속에 인하폭도 0.5%포인트의 대폭이었다. 한은은 금리를 내려도 경기가 워낙 침체상황이어서 수요 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제 유가가 관건이지만 정부가 유류 탄력세율을 조절해 인상 요인을 흡수키로 해 당장은 큰 부담이 아니란 시각이다. ◇ 효과는 회의적 =강형문 한은 부총재보는 "콜금리와 총액한도대출 금리가 함께 인하돼 기업 대출금리에 미치는 상승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대출금리가 중소기업은 0.5∼1%포인트, 대기업은 0.5%포인트 가량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총재는 "금리인하를 통해 실물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대출금리가 인하되도록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이미 상당기간 지속됐지만 기업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몇몇 부실기업을 제외하곤 '이자 부담 때문에 장사 못하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다. 당장 제조업 생산이나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희박하다.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은 "금리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정책수단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금리정책은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부작용이 더 걱정 =저금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금리를 내려도 주가가 오르지 않고 민간 소비도 큰 변화가 없다. 일본식 유동성 함정이나 저성장 고물가라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은은 국내 경제가 부진해도 아직 플러스 성장 상태이고 인플레 기대심리도 높지 않아 그런 상태로 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주춤하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댈 가능성은 높아졌다. 은행 여수신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이지만 금리생활자의 소득 감소에다 기업 수익성 개선효과도 미미하다. 이인실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장은 "한은의 금리인하는 불가피했지만 저금리의 부작용은 이미 깊게 뿌리박혀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거대 부실대기업 처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공조효과는 있나 =미국에 발맞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 것엔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만 금리를 내려선 달러화 약세로 미국 경기회복이 더욱 지연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그러나 한국은 원화가 기축통화도 아니고 환율도 약세여서 금융 공조에 동참한다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다. 선진국 장단에 맞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