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됐다. 올해 예산 1백5조원(1차 추가경정예산 포함)보다 6.7∼7.6% 많은 1백12조∼1백13조원으로 한다는 기획예산처안 그대로다. 외환위기 이후 기형적으로 많이 늘어났던 1999년(17.3%)을 제외하곤 98년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율이다. 정부가 예년에 비해 예산을 많이 늘렸다는 사실은 경상성장률과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예산증가율을 경상성장률보다 2∼3%포인트 낮게 편성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경상성장률 전망치(8%)에 비해 1%포인트 남짓밖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정부가 이처럼 '약간의 무리'를 감행한 것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경기 탓이다.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3%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되던 차에 미국 연쇄 테러사건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회복시기마저 지연될 것으로 우려되자 재정지출 확대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정부가 선택한 증가율 6.7∼7.6%가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란이 거듭될 전망이다.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세출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반영키로 한 적자 규모는 2조원 수준. GDP의 0.4% 정도로 1%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는 올해보다도 적다. 일부 전문가들은 GDP의 2%까지는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 테러 사건을 계기로 재정지출을 크게 확대하기로 한만큼 이번에 합의된 내년 예산안이 수정될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 정부는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방안과 별도로 내년 예산안의 적자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지금은 (정부가 연초 마련한) 비상계획 3단계를 넘어서는 비상 상황"이라며 "정부가 건전 재정 복귀 방침만 고수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또 2차 추경 편성 여부와 관련, "늦어도 금주말까지 여.야와 협의할 것"이라며 "2차 추경을 할 수도 있고 내년 예산에 반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재정지출을 확대하기로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2차추경 편성과 내년 예산안 수정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마지막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