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급속한 경기 추락에도 불구, 이달 콜금리를 동결하는 등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 정부의 재정 확대에 발맞춰 지난 7,8월 두달 연속 콜금리를 인하했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세계 경기가 동반침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내려봐야 이렇다 할 효과보다는 되레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저금리 부작용, 물가 및 부동산시장 불안, 금리인하 무용론 등이 확산되면서 한은의 경기 대응이 부양론에서 신중론으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전철환 한은 총재는 그러나 콜금리 인하를 경기 해법의 정책 수단으로 남겨 뒀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3.4분기 경제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전망인데다 4.4분기에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판에 금리를 동결한데 대해 고개를 갸웃했다. 대처 시기를 또 놓치는게 아니냐는 것. ◇ '좀더 두고 보자'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발표문에서 '금리·재정정책의 경기대응 노력이 경제 각 부문에 파급되는 영향을 좀더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동결 이유를 밝혔다. 금통위 회의는 1시간 10분만에 끝났다. 2∼3시간씩 격론을 벌였던 7,8월 금리인하 때와 비교하면 별다른 이견도 없었다. 전 총재는 최근 추경예산이 통과됨에 따라 경기부양 효과가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데다 그동안의 금리인하 효과가 가시화되는 데도 시차가 있다고 말했다. 석달 연속 금리를 인하할 경우 오히려 과잉 대응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했다. 재정.금리정책의 효과는 적어도 3∼6개월은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미국에서도 대공황 수준의 불황 걱정 속에 지표상 개선 기미가 엿보여 향후 경기전망이 엇갈리는 점도 고려됐다. 전 총재는 NAPM(전미구매관리자협회)의 생산지수(52.2)와 신규주문지수(53.1)가 기준치(50)를 넘어섰다고 구체 수치를 들어가며 강조했다. ◇ 부작용이 더 걱정 =한은은 그러나 저금리 부작용과 세계적인 논란을 빚고 있는 금리인하 무용론에 더 민감했다. 전 총재는 "금리 정책만으로 경기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동안의 금리인하는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올들어 7차례에 걸쳐 금리를 3%포인트나 낮췄지만 △IT(정보기술)산업 과잉투자·재고누증 △소비 위축 △부의 효과 감소(주가 하락) 등의 요인과 상쇄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경기 영향에다 국내 구조조정 지연이 인하 효과를 희석시켰다는게 전 총재의 시각이다. 여기에다 이자생활자들의 고통, 보험 연기금 등의 역마진, 부동산시장 꿈틀 등 금리인하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도 금리 조정을 통한 정책 대응을 주저하게 만든다. 지난달 물가(4.7%)가 예상보다 덜 떨어진 점도 추가인하를 재고하게 했다는 것이다. ◇ 기약 없는 경기회복 =한은은 3.4분기 성장률 2%대, 4.4분기 4%대로 빠른 회복은 일단 물건너갔다고 보고 있다. 전 총재는 "4.4분기가 전분기보다는 나아져도 회복 속도는 매우 완만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전망치는 언급을 피했다. 이는 작년 4.4분기부터 경기가 하강한 점을 감안할 때 통계상 기술적인 반등 이상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성장률을 3.4분기 1∼2%, 4.4분기 3%대 저성장을 점치고 있어 연말 경기회복이 어렵다는데 의견이 일치돼 있다. 한은 관계자는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여서 해외 경기회복이 전제되지 않은 채 국내 경기회복 시점을 점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달엔 일단 '두고 보자'고 접어뒀지만 물가가 더 내려가고 부실기업 처리가 매듭지어진다면 언제든 칼(금리인하)을 빼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