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재수(再修)" 끝에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까.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재조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파견한 실사단이 30일 한국 정부와의 연례 협의를 마치고 돌아간다. 한국이 S&P로부터 부여받은 신용등급은 현재 BBB. 정상적인 신용상태를 인정받는 "투자적격" 등급으로는 꼴찌에서 두번째다. 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은 이후 투기등급으로까지 곤두박질쳤다가 99년 11월에 현 등급으로 올라섰지만, 이후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외형적인 잣대로만 본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이상 올라서기에 손색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최근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자금을 3년 이상 앞당겨 완전 상환했고, 외환보유액(6월 말 현재 9백70억달러)도 세계 5위 수준으로 쌓아놓았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급전직하한 직접적 요인이 외환보유액 고갈과 이로 인한 IMF 차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원상회복'(97년10월 기준 AA-, 22개 등급가운데 네번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단계 이상 상향조정을 기대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 등급의 상향조정을 선뜻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세계경기 악화로 수출이 격감하고 있는 터에 하이닉스반도체의 유동성 위기가 터져 나오는 등 악재가 돌출하고 있어서다. 신동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S&P가 한국 관련 보고서를 내놓을 오는 11월께까지 앞으로의 2∼3개월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에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자동차 서울은행 등 경제현안을 해결하는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 이번 연례협의는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진행됐다. S&P 대표단은 방한 첫날 과천 종합청사를 방문, 재경부 5층 회의실에서 국제금융국 경제정책국 금융정책국 관계자들을 번갈아 만났다. 점심시간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피자를 시켜 먹으며 질문을 퍼부었다. 신 재경부 국장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는지, 대외부문은 건전한지, 정부는 어떤 근거로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져물었다"고 전했다. 정부측 자세도 진지했다.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하이닉스반도체 유동성 위기, 회사채신속인수제 등 S&P측에서 의문을 품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말해 주지 않으면 S&P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게 되고 결과적으로 등급 재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S&P는 지난 27일 재경부를 시작으로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 등을 방문했다. 30일에는 출국에 앞서 진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도 만난다. S&P는 홍콩에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신용평가팀을 두고 한국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연례협의를 통해 수집정보를 확인하고 비공개 정보를 확보하는 등 나름의 치밀한 작업을 거친다. 국가신용평가팀은 이렇게 수집된 정보와 연례회의 결과를 토대로 분석보고서 초안을 작성한다. 이 보고서는 국가신용등급 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보고서를 완성하는데 대략 2∼3개월이 걸린다.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의 평가결과를 한권의 책으로 발간하는데 대외에 공표되는 것은 국가신용등급 판정 결과와 간단한 설명 뿐이다. S&P는 그러나 라이벌 회사인 무디스와 더불어 월가 국제금융 자본의 이해를 철저하게 대변, 신용등급을 투명하게 조정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98년 초 일본의 신용등급을 뚜렷한 이유없이 깎아내려 일본 정부로부터 "S&P의 신용도를 조사해서 공개하겠다"는 반발을 샀던 것이 단적인 예다. S&P는 1916년 설립된 스탠더드사(社)가 모태가 됐다. 1923년부터 회사채 신용등급평가업무를 시작했고 1942년에는 푸어스사(社)를 합병했다. 66년에는 세계적 출판사인 맥그로힐(McGraw-Hill)의 사업부문(Division)으로 편입됐다. 현재 60여개 국가에서 신용평가업무를 하고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