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의 끝없는 추락은 실물경제의 부진과 제 기능을 잃은 금융시스템 문제 등 복합적 요인들이 한데 엉킨 결과다. 금융시스템의 경우 일본은행이 지난 14일 거의 자발적으로 추가적인 양적완화 카드를 내놓았음에도 불구, 증시에는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민간금융기관의 당좌예금 한도를 5조엔에서 6조엔으로 늘리고 장기국채 매입액을 월 4천억엔에서 6천억엔으로 확대했지만 시장이 꿈틀거린 것은 15일 단 하루뿐이었다. 일본은행이 돈줄을 풀어도 증시 구멍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자금 순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가져다 쓸 수 있는 자금이 많아졌어도 불량채권에 발목이 잡힌 민간 은행들은 자기자본 비율을 의식하느라 증시에 매달릴 기력이 바닥났다는 게 증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 추세라면 9월 중간결산에서 대규모 주식평가손을 자기자본으로 채워야 할 은행들이 더 이상 주식과 채권에 돈을 쏟아 부을 수 없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또 기업은 기업대로 구조조정을 위해 부동산과 주식을 앞다퉈 내다 파는 상황에서 돈을 빌어 쓸 이유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14일의 양적완화는 독도 약도 아닌 아무 쓸모 없는 카드'(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라는 혹평도 이같은 사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죽을 쑤는 실물경제도 증시불안을 부추기기는 마찬가지다. 사상 최초로 5%대로 올라선 실업률과 급속히 오그라드는 무역수지 흑자,기업도산도 주가하락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금융정책이 컨트롤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고강도 충격카드가 나오지 않는 한 증시 분위기 호전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교수 출신의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상이 인플레정책 도입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디플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로(0)% 이상의 인플레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다며 영국의 경험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은행이 돈을 풀어 경기를 자극하는 인플레 정책을 쉽게 따를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