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사장들이 리츠칼튼 호텔에서 긴급히 회동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칼같이 돌아오는 어음을 막아내기도 힘들었지만 정부 경제관료들의 전방위 압박도 심상치 않아서다. 적어도 대우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대우를 죽이려 작정들을 하고 나왔다. 행동보다는 오히려 말로써 대우를 죽이려 들었고 말의 융단폭격이 거듭됐다. 정부 지원조치가 나오고 대우의 자구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경제관료들이 앞장서서 "이번에도 잘 안될 것"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팔리지 않을 것"이라며 재를 뿌리며 다녔다. 결국 최후의 일전을 준비할 때가 왔다. 병법에도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고 나와 있지 않았던가. 사망신고서 리츠칼튼 호텔에서의 사장단 모임이 있은지 일주일 만인 99년 5월12일께 김우중 회장은 구조조정본부 김우일 상무(경영관리팀장)를 찾았다. 이미 밤이 이슥한 시간. "법정관리로 가지. 준비해" 짧지만 단호한 지시였다. "네?" "회사별로 법원에 낼 서류들 챙겨봐" 김 상무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시 자체도 놀라웠지만 자신에게 지나치게 과중한 숙제가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궁금한게 너무도 많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가능성이 중역들 간에 은밀하게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회장으로부터 직접 그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김 상무는 누구보다 김 회장을 잘 알았다. 회장의 지시에는 언제나 감춰진 숨은 뜻이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하고 김 상무는 회장실을 물러 나왔다. 감당하기 어려운 과업을 맡게 된 김 상무는 구조조정본부에 돌아와 김태구 사장과 야밤의 "돌발 사태"를 놓고 상의를 거듭했다. 야밤의 돌발적인 소집 정도는 대우 수뇌부에선 흔한 일이었다. 재무 담당인 또 다른 김 상무도 자리를 같이했다. "회장님의 생각을 알 수가 있어야지"라고 김 사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떻든 지시가 떨어졌으니 준비는 해야지" 캠프 법정 관리를 위한 캠프는 힐튼호텔의 객실 4개를 빌려 극비리에 차려졌다. 대우센터 등 회사 안에서 사망신고서를 작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법정관리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 하나만으로 전 그룹이 올스톱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법률자문단으로 몇명인가의 변호사들이 파견돼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2주일이 채 안돼 모두 철수했다. 대우그룹의 한 인사는 이 변호사들이 "법정관리 절대불가"라는 정부의 방침이 확고해 5월말께 철수했다고 증언했다. 정부측 관계자들은 물론 펄쩍 뛰고 있다. 완벽한 서류를 준비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기업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하고 복잡하게 얽힌 상호출자나 지급보증 관계도 따져봐야 했다. 준비할 서류가 몇 박스로도 부족했다. 작업은 6월초까지 밤늦도록 계속됐다. 관료들의 맹공 우리의 필름을 약간 뒤로 돌리기로 한다. 총대는 언제나처럼 강봉균 재경부장관이 먼저 맸다. 대우그룹이 대우중공업(조선) 매각이 포함된 2차 구조조정계획을 낸 지 1주일 뒤인 4월 27일이었다. 강 장관은 "(대우중공업 매각이) 가격이 맞이 않아 제대로 팔릴지 의문"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대우그룹 전체로 지난해(98년) 부채가 17조원이나 늘어났다는 부연설명도 뒤따랐다. 자본시장이 가뜩이나 의심스런 눈초리로 대우를 지켜보는 상황에서 강 장관의 이같은 발언들은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었다. 우리가 냉소라고 부르는 차가운 미소 그 자체였다. 이헌재 금감위원장도 강 장관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4월말 금감위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구노력이 목표에 미달하면 바로 신규여신 중단 등 제재를 가하거나 워크아웃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관료들의 냉소는 이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됐다. 대우사람들이 지금까지 고개를 흔들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대목들이다. 배수진을 치다 결국 관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김 회장은 물론 사장단이 초긴장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5월 5일 리츠칼튼호텔에서의 사장단 회동도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대우가 힐튼 호텔에서 극비리에 법정관리를 준비하던 어느날 (주)대우의 장병주 사장이 이헌재 금감위원장을 찾았다. 6월 중순이었다. 장 사장은 정확한 날짜는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는 아직 감방 생활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니 어떻게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장 사장이 직설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저라고 왜 돕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위원장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장瑛揚?한참 뜸을 들였다. "버틸 수 없으면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장 사장은 마치 가슴 속의 비수를 깨내듯 말했다. 이 위원장이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요. 법정관리는 안돼요"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이 위원장은 몇번이고 법정관리는 안된다고 말했다. 유동성 지원 일시적이긴 했지만 그러나 약효는 있었다. 며칠후 삼성그룹과의 빅딜이 무산되고 금감위쪽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은 대우 관계자의 증언. "금감위 쪽에서 "정말 얼마나 필요하냐"는 문의가 왔다. 이것이 7월 19일 "유동성 개선을 위한 자구계획안"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대우는 6조5천억원의 신규 자금지원과 시설재 수출분(40억달러) 환어음(DA) 할인 등을 요구했다. 대우그룹의 같은 관계자는 "결국 1주일이 지나 4조원의 자금이 지원됐다. 그러나 금융권은 계속 자금을 회수해 갔고 금감위는 더이상 도와주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워크아웃 결정 금감위는 결국 컨설팅 회사인 아더앤더슨을 통해 대우 계열사에 대한 실사를 실시하고 8월20일께부터는 워크아웃 신청서 양식과 내용을 수시로 바꿔가며 항복을 요구해 온다. 8월24일 금감위가 정식으로 워크아웃을 통보해 오자 (주)대우 장병주 사장과 구조조정본부 정주호 사장은 급한 김에 청와대로 달려갔다. 그들은 이기호 경제수석을 만나 "차라리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이 수석은 "만약 법정관리를 고집하면 험한 꼴 보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 [ 특별취재팀 =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