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의 길(HP's way).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한 지 60여년만에 연간 매출이 5백억달러에 육박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HP는 전세계 벤처기업인에게 희망의 이정표였다. HP의 길이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칼리 피오리나(47)회장이 있다. 피오리나 회장은 루슨트테크놀로지스 해외서비스부문 사장이던 1999년 7월,연봉 9천만달러를 받고 HP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됐다. HP 역사상 첫 여성 CEO,미국 30대 기업(다우존스 지수 편입기준) 첫 여성 CEO인 그에게 시장도 축하를 해줬다. 피오리나의 영입이 발표된 날 HP 주가는 2.68달러 뛰었고 루슨트테크놀로지스는 1.87달러 떨어졌다. 취임 첫날 그는 "HP의 좋은 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바꾸자"며 개혁의 칼을 들었다. 그는 임원회의 장소를 본부 건물에서 연구동으로 옮겼다. 창조를 생명처럼 여겨온 HP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자는 취지에서다. 버릴 것은 버렸다. 피오리나 회장은 83개 제품사업부를 12개로 줄였다. 많은 사업부는 창업자 데이브 패커드와 빌 휴렛이 벤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채택한 전략의 산물.신규사업이 크면 새 사업부를 만들어 독자생존의 길을 걷게 한 것.그러나 사업부가 늘면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관료화가 나타났다. 중간관리자를 대거 없앤 구조조정은 그의 리더관이 크게 작용했다. 리더의 역할은 사원관리가 아니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피오리나 회장은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구조에도 칼을 댔다. 인터넷 종합솔루션 업체로 탈바꿈시키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피오리나 회장의 개혁이 과감하고 빠른 것은 그 자신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스탠퍼드대에서 중세사와 철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후 법학교수인 부친의 영향으로 UCLA 로스쿨에 들어갔지만 1년 만에 중퇴했다. 이탈리아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MIT에서 공학석사,메릴랜드에서 MBA를 밟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AT&T에 입사한 그는 미국 최고의 기업공개 성공사례로 꼽히는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분사작업(30억달러 공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변화에 적극적인 것은 강한 자신감에서 연유한다. 피오리나 회장은 7학년(중1)때 희랍어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기로 결심하고 해냈다. 그는 해보지도 않고 'NO'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크라이슬러의 리 아이어코카처럼 취임초 광고에 출연,HP를 다시 한번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도 강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피오리나 회장은 취임후 1년간 실적호조와 함께 HP의 CEO 사장 회장이라는 3개 타이틀을 거머쥐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8년부터 3년 연속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기업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인수가 무산되고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한 작년말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HP의 기업 회계연도 3분기(5∼7월) 순익이 95% 급감했고 연말까지 6천명을 감원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HP 주가도 취임초에 비해 반토막이 나면서 조기 퇴진론까지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최근 HP 이사진이 피오리나 회장에게 1백% 지지를 보내면서 위기상황을 일단 모면했다. 피오리나 회장은 지난해 MIT 졸업식에 참석,"인생은 고비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긴 여행"이라고 회고했다. 중도하차의 위기를 일단 벗어난 그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변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늘 하는 말이 있다. "HP에는 위대한 역사가 있지만 존재하는 것은 항상 새로운 HP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 피오리나 회장 약력 ] △미 텍사스 오스틴 출생 (1954년) △스탠퍼드대 졸업(중세사 와 철학전공,1976년) △UCLA 로스쿨(중퇴) △메릴랜드대 MBA △MIT대 공학석사 △AT&T 입사(1980년) △루슨트테크놀로지스 해외 서비스부문 사장(1997년) △HP 최고경영자(1999년 7 월) △HP 회장(200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