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대통령'은 죽었나. 앨런 그린스펀(75)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 그가 지난 87년 폴 볼커를 밀어내고 FRB 의장이 된후 작년까지 뉴욕증시는 그의 말한마디에 울고 웃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증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그린스펀효과는 사라지고 그린스펀의 존재자체가 시장의 악재가 되는 "그린스펀 역효과"만 난무하고 있다. ◇흘러간 그린스펀 효과=그린스펀의장이 21일 금리를 또 내렸다. 올들어 7번째다. 예전같았으면 증시는 열광하고 경제위기설도 뒷걸음질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반응은 너무도 냉랭했다. 금리인하 발표후 주가는 더 떨어지고 달러도 고개를 떨궜다. 경제대통령,세계경제의 구원자,그에게 따라붙던 명성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린스펀 효과'는 흘러간 전설이 되고 말았다는 말이 월가에서 새 나왔다. 그의 금리인하조치는 경기회복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커녕 경제가 불안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증시를 살리는 효과는 커녕 오히려 주가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만 내고 있다. 연방기금금리가 3.5%로 0.25%포인트 인하됐지만 나스닥지수는 2.7%,다우지수는 1.4% 하락했다. 달러가치도 달러당 1백20엔선에서 1백19엔대로 떨어졌다. 그린스펀 의장이 올들어 8개월동안 인하한 금리는 무려 3%포인트. 미국역사상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처럼 많이 내린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현재 다우 나스닥 S&P500 등 3대 지수가 연초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다. 올들어 7번의 금리인하중 인하 당일에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린스펀 의장이 기습적으로 금리를 내린 1월3일과 4월18일에만 주가가 올랐을 뿐이다. ◇거세지는 비판론=그린스펀 의장이 금리를 인하하면 경기둔화를 회복세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그의 영민했던 경제감각은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가 21일 금리인하와 함께 미국 경제가 여전히 부진한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자 월가 일각에서는 '치매가 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금리를 내리면서 경기부진을 운운하는 것은 금리효과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고도의 판단과 능력이 요구되는 미국 경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고령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경제주간지 배런스는 "그린스펀의 금리정책이 조건반사적이며 기회주의적"이라고 공격했다. 경제의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각 금리 조절을 통해 경제안정을 도모한다는 그린스펀 의장의 조치는 시장 추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