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구조조정 현주소 ] 한국은 앞으로 네 단계의 구조조정을 해내야 한다. 단계별 과제와 실질적 주체, 현재까지의 진척평가를 살펴보자. 제1단계 - 긴급 문제 수습 한국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융기관의 고질적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일반시민의 저축조차 원금을 날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정부는 부도상황에 이른 기업의 구제라든지 부실기업 정리,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은행의 정상화 등 그때그때 벌어진 문제들의 수습을 위해 노력했고 특히 금융 분야의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간 정부는 은행을 비롯 한국투신 대한투신 대한생명 등에 새로운 자금을 투입시켰고 부실채권이나 부채탕감 같은 조치는 예금주를 어느 정도 보호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기업들은 지난 99년 대량의 신주를 발행, 후기 구조조정을 앞두고 잠시 시간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들은 일차적 차원의 수습일 뿐이었다. 지금도 추가자금 지원을 필요로 하는 구멍은 계속 생겨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 구멍들을 메워 나가야 할 판이다. 더구나 기업들은 자금 확보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불안정한 재무상태가 그동안 부실회계와 투명성 결여로 가려져 왔었다는 것을 의식해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기업의 자산과 수익창출 능력, 나아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1단계 구조조정 작업은 40~50%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 제2단계 - 가치파괴 차단 사실 1단계는 과거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일 뿐이다. 제2단계에서는 1단계의 수습이 추가 손실과 자금지원의 낭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가치파괴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위한 촉매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기업에 있다. 기업의 경영진은 투자자와 국민의 돈이 더 이상 헛되이 쓰여지지 않게 수익성 개선에 힘써야 한다. 지금도 1천6백여개의 부도 기업들이 청산되지 않은 채 추가지원금을 기다리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대우자동차를 들 수 있다. 대우자동차는 1999년 7월 대우그룹이 붕괴된 후 매달 2억달러의 현금을 허공에 날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소규모 영업 이익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엄청난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현금 흐름을 갖추기에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관대히 평가해도 2단계 구조조정은 30~40%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제3단계 - 시스템 구조조정 제3단계는 거의 전적으로 기업 경영진이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기업들은 경영 및 재무시스템 개선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수익성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법적 개선과 적절한 감독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옛 관행을 고수하길 고집하고 있다. 지금은 기업 경영인들의 굳은 의지와 과감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현재 3단계 성과는 5~10%에 불과하지만 영웅적으로 이를 수행한 기업도 나오고 있다. 예로 하이닉스반도체는 경영시스템의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으며 타 기업들의 모범적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4단계 - 신 패러다임 구축 처음 세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성해 살아남은 기업일지라도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제대로 경쟁하지 못할 수 있다.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하는 기업들 대부분 지난 20년간 스스로 고통스럽고 심도 있는 구조조정을 실천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지난 40년간 국내시장 보호 관행에 젖어 경쟁적 환경에서 유리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더 이상 "은둔의 왕국"이 아니며 글로벌경제에서 더 이상 그럴 수도 없다. 세계경제에서 동북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한국은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제 한국은 동북아의 리더가 될 수도 있고 방관자로 머무를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다. 그 성패는 구조조정에 달려 있다. 3단계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단계도 전적으로 기업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 경영진은 경쟁력 강화와 리더십 발휘에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으로 명확한 전략적 비전을 세워야 한다. 잭 웰치가 이끄는 GE는 명확한 사고와 경영진의 분명한 목표가 어떻게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탈바꿈시키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웰치는 GE가 1등인 분야나 2등이지만 1등이 될 가능성이 분명한 분야에만 매진하도록 했다. 한국이 세계 경제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선진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 기업 지도자들중 아직 소수만이 세계적 리더십에 필요한 첨단 패러다임을 터득하고 있다. 아직 4단계 성적표는 1~5%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빨리 이 비율을 높여야 한다. [ 정리=기획취재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