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신.구경제 모두에서 복고바람이 불고있다. 이른바 구경제 분야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개도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던 선진국 제조업체들이 고임금을 무릅쓰고 선진국에 다시 공장을 짓는가 하면 신경제 분야에서는 닷컴 기업들의 퇴조와 함께 대규모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선전이 눈에 띠기시작, "다시 큰 것이 아름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텔, IBM 등 컴퓨터업계의 거대기업들이 잇따라 순이익 감소를 발표하고 있는"지옥같은" 상황에서 1년전만해도 한물간 업체로 간주되던 독일의 소프트웨어 대기업 SAP는 최근 지난 2.4분기 순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2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휴지가 된 스톡옵션(주식매입청구권) 대신 현금으로 과거 직원들을 다시 유치하고 닷컴기업들의 잇딴 붕괴에 질린 고객들도 다시 돌아온 결과다. 이 회사의 하소플래트너 사장은 이를 "중력의 복귀"라고 표현했다. SAP와 프랑스의 다솔 시스템, 또 프랑스의 비즈니스 오브젝트, 독일의 소트프웨어 등 유럽 4대 업체의 2.4분기 매출액 신장률은 작년 동기대비 14%에 달했다. 그러나 독일의 인터솝, 아일랜드의 볼티모어 등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소프트웨어 중소기업 4개의 매출액은 15%가 감소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도했다. 소규모 벤처기업들의 창업이 붐을 이루고 벤처캐피털 업체들은 거의 무제한으로돈을 쏟아부었던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자연히 인재들과 언론의 초점은 돈을 따라 흘러갔다. 그러나 인재유출과 기회상실을 우려한 첨단분야 대기업들과 구경제 대기업들이자체 벤처펀드를 만들고 인터넷 업체들을 분사시키는 한편 혁신적인 첨단제품들을기존의 협력업체들보다는 새로운 창업기업들에서 구매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올들어 세상은 달라졌다고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는 진단했다. 미국 벤처캐피털 업체들의 지난 1.4분기 투자액은 100억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40%가 감소했다. 기록적인 감소폭이었다.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조달길도 막혔다. 가장 최근에 주식을 공모한 인터넷 관련 창업기업 라우드클라우드의 경우 2차례나 공모가격을 조정해야 했고 현재 주가는 주당 2달러로 공모가격의 3분의1에 불과하다. 또 닷컴기업들은 러셀2000 등 주요 주가지수 편성대상에서도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사라지고 있다. 기존업체들의 사내 벤처펀드 설립붐도 식어 거의 절반이 이를 포기했으며 닷컴기업을 분사시켰던 업체들도 이를 되사들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인재들도 창업기업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창업은 이제 더 이상 대학 졸업생들의꿈이 아니며 이들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을 떠나 창업기업으로 몰려갔던 최고경영자들도 되돌아 오거나 은퇴하고 있다. 고객들마저 망한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갖기를 꺼려 창업기업들을 멀리하고 있다. 기술혁신에 앞장섰던 기업들도 일단 기술이 성숙하면서 대기업들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 "기술혁신이 아직 중요하기는 하지만 실험단계는 끝났다"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통신업계에서도 노스포인트, 텔리전트, 윈스타 등 한때 유망해보이던 신규진출업체들이 신규 자금조달원이나 원매자를 찾지 못해 도산했다. 하드웨어 업계도 마찬가지로 대기업들이 공세를 취하고 있다. 컴퓨터 제조업체인 델이 가격 인하로 컴팩을 제치고 세계 최대업체가 됐고 통신장비 제조업체들도 공격적인 가격인하로 신참기업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상에서도 "작은 것"은 취약해지고 있다. 지난 3월 현재 인터넷 이용자의 60%가 단지 14개의 웹사이트만을 방문한 것으로 조사돼 2년전의 110개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온라인 음악업계에서는 한때 기존의 5대 음반업체들을 도산시킬 것으로 예상됐던 E뮤직, MP3닷컴, 마이플레이, 냅스터 등이 차례차례 기존 업체들에 인수됐다. 신경제에서 다시 일고 있는 "큰 것이 아름답다"는 현상과 함께 구경제인 제조업분야에서도 지난 30년간 계속된 대기업들의 저임금 국가로의 공장이전 물결에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전자, 의료장비 등 고가제품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고임금 국가내의 직원들을 늘리고 있다. 세계적인 광학기계 제조업체인 독일의 칼 자이스는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감원한파 속에서도 남부 독일의 한 소도시에 최신 공장을 건설하고 200명의 엔지니아와 기술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한 분석가는 자본재 제조업체들이 국내시장에서는 고도로 숙련된근로자들을 채용하고 저임금 지역에서는 적절한 양의 제조업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2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유럽에서 엔지니어링 분야의 고용은 0.6%가 증가한 760만명을 기록,오랜만에 증가세를 보였고 올해도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이분야의 고용증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의坪括?자동차 부품 및 항공기 등 엔지니어링 제품의 기술적 수준이 점점 더 정밀해져 가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들 제품의 개발과 제조에고도로 숙련되고 임금이 높은 근로자들이 필요하다는 것. 또 의료장비처럼 안전이 매우 중요한 제품들의 경우는 고임금 국가에서만 제조된다는 점이 마케팅 측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심장박동조절기의 경우 소비자들이 스위스와 카자흐스탄중 어느 곳에서 만든 제품을 선호하겠느냐는 것이다. 조립장비가 점점 정밀해지면서 인간 노동력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것도 한 원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자동화된 공장의 경우 인건비 비중은 5-10%로 떨어져있고 나머지는 자본비용과 부품구입 비용이다. 이밖에 전세계적으로 거래되는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의 경우는 각 지역 소비자들의 수요변화에 쉽게 대응하기 위해 고임금 국가에도 상당수의 공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규모 벤처기업들의 장점이나 저임금 국가의 경쟁력이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바람은 일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chkim@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