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매각 업무를 왜 산업은행에서 합니까. 오호근씨에게 넘기세요" 2000년 2월 중순.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대우차 매각작업을 보고하기 위해 금감위를 찾은 산업은행 박상배 이사(현 부총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98년 특수관리부장으로 기아자동차 입찰을 성공적으로 마친 여세를 몰아 대우차 입찰준비에 여념이 없던 박 이사는 그날로 업무에서 손을 뗐다. 모든 자료가 대우구조조정협의회의 오호근 의장에게 넘어갔고 입찰 정보는 차단됐다. 이헌재-이용근-오호근으로 이어지는 소위 "금융 라인"의 "보복"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소위 금융 라인은 외환위기 이후 나름대로 전문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자부심도 대단했다. 때마침 GM이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극비로 GM에 배타적 협상권을 주었고 GM은 대우차 가치를 50억달러선으로 제시한 투자의향서를 금감위에 제출했다. 시한은 연말이었다. 산업은행의 박이사는 그러나 거의 GM으로 넘어갈 뻔했던 대우자동차를 국제 입찰로 선회시키는데 성공했다. 기아 입찰때 친분을 쌓아두었던 포드 관계자들을 만나 인수의사를 타진했고 포드의 드랜코 이사가 급거 귀국한 것은 12월8일 이었다. 박 이사는 현대 삼성과도 접촉했다. 이기호 경제수석,강봉균 재경부 장관도 매각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한푼이라도 더 높은 가격을 받기위해서는 경쟁입찰이 필요하다며 "지원 사격"을 했다. 여론도 국제 입찰을 지지했다. 이헌재 위원장은 12월20일 "대우차 인수를 원하는 투자자가 있을 경우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말로 한발 물러섰다. 오 의장이 매각에 실패하고 대우 의장직을 물러나면서 대우차 매각 주도권은 다시 산업은행으로 돌아왔다. 마침 금감위원장은 산업은행 총재를 지낸 이근영씨였다. 매각 실패를 놓고 오의장에 대한 책임론이 무성한 가운데 오의장은 급거 GM에 SOS를 쳤다. 9월27일의 홍콩 회동은 그 결실이었다. GM을 끌어들인 그는 10월7일 대우차 매각 자문업무를 맡았던 라자드 아시아의 회장직을 맡아 싱가포르로 떠났다. 외환위기 이후 60여개 기업의 워크아웃을 지휘하고 대우 계열사들의 해외채권 매입협상을 주도하며 성가를 높였던 오호근씨가 오점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미국계 라자드를 매각작업에 끌어들였고,곧바로 그 회사의 회장으로 옮겨간 것은 적지않은 논란도 불렀다. 지금도 대우차는 라자드에 상당한 자문료를 내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조일훈 기자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