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시계를 앞으로 돌려보는 것도 사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결론을 알고 뒤로 돌아간다면 논리구조가 일목요연하게 파악될 터다. 지금 우리는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2000년,그러니까 바로 지난해 가을로 돌아와있다. GM과 포드의 계산을 알아야 이를통해 대우자동차를 역추적할 수 있다. 포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때는 이미 대우가 만신창이가 되고 난 다음이었다. 정말 우연히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연이어 닥쳐왔다. "악재는 어깨동무를 하고온다"는 말은 대우를 위해 예비된 말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몇가지 새로운 사실도 공개할 참이다. 이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새벽 두시 2000년9월15일 새벽 2시가 막 지난 시각.그때까지 퇴근하지 않고있던 오호근 의장 집무실로 요란스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미스터 오! 유감스럽게 됐습니다. 포드 이사회는 대우차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포드의 웨인 부커 부회장이었다. 같은 시각 한영철 대우자동차 상무도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포드의 폴 드렌코 이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포드 이사회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매각팀으로서는 지난 10개월여의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져내렸다. 포드는 인수 포기 명분을 대우차의 부실로 돌렸다. 국내 매각팀은 포드의 파이어스톤 타이어 리콜로 발생한 엄청난 손실과 주가하락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포드는 대우를 핑계될 뿐이었다. 비정한 배신이었다.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결정에 국내는 물론 세계 자동차업계가 경악했다. 그러나 GM은 달랐다. GM은 포드가 대우차 실사에 열을 올리던 2000년 여름 디트로이트 현지 언론을 통해 "포드가 대우를 인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GM에게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20년에 가까운 제휴기간과 2년여의 실사를 거쳐 누구보다도 대우차를 많이 알고있는 GM이었다. 다시 GM 200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포드와 대우차의 비극적인 종말이 다가온 자리에는 다시 GM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GM은 늘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끝내 파경으로 귀착되고만 "지난 여름을 나는 알고 있다"는 식으로 GM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GM은 대우차의 "변심"을 책망하지도,그렇다고 용서하지도 않았다. GM의 평정심이었다. 우리에게는 없었던... 97년 김 회장과 전략적 제휴 협상을 할 때나 99년 이헌재 위원장과 수의계약을 도모할 때나 GM은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승부사 김우중 회장도 바위같은 GM의 침묵에 나가 떨어진 터였다. 이번에는 정부와 채권단이 GM을 상대할 차례였다. 더욱이 우리가 손에 쥔 티켓은 단 한장이었다. 포드를 몰랐기 때문에,국제 M&A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많은 기회를 허공에 날려보낸 다음이었다. 2000년 9월27일 홍콩 샹리라 호텔. 오전 8시55분께 간단한 시리얼로 아침 식사가 끝났다. 오호근 대우구조조정협의회 의장,한영철 대우자동차 기획실장,최익종 산업은행 대우전담팀장이 2층 비즈니스 센터에 들어섰다. 5분여가 막 지났을까. GM의 루돌프 슐레이스 아시아.태평양 사장,앨런 페리튼 GM코리아 사장,피아트의 마르코 모스카 부회장이 차례로 들어섰다. 극비 회동이었다. 서울에서 날아간 관계자들은 제각기 별도의 출장이라고 둘러댔다. "오랜만입니다. 지난 일은 잊고 잘 해보십시다"(오 의장) "동감입니다. GM은 대우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슐레이스 사장) 포드가 대우차 인수 포기를 선언한지 정확히 2주일째 되는 날 국내 매각팀과 GM은 이렇게 홍콩에서의 비밀협상을 시작했다. 99년말에 국제입찰로 선회하면서 중단됐던 GM과의 단독 협상이 재개되는 순간이었다. 한영철 실장이 대우차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들이 포드에 제공했던 자료입니다"라며 한실장의 말을 막고 나선 것은 GM의 슐레이스였다. 요구조건도 1년전과 달라졌다. 쌍용차 인수는 재고해야겠고 해외법인 인수도 국내 법인 인수후에야 검토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대우차 인수 그 자체에 대해서도 확실한 언급이 없었다. 그저 "관심이 있다"는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우발채무 인수도 거부했다. GM과의 대우차 협상이 지금까지도 걷돌고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했다. 우발채무는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에 매각할 때의 바로 그 함정이었다. GM은 잔인하게도 대우차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경직된 노사관계와 영업이익조차 내지못하는 사업구조를 문제삼았다. 가격은 나중 문제였다. 2000년 1월부터 4월까지 정리해고 1천5백명을 포함해 9천명 이상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지만 기업가치는 갈수록 추락하던 중이었다. 3월엔 아더 앤더슨의 보고서가 나왔다. "부평공장을 폐쇄하고 폴란드와 인도에서도 철수하라"는 제안이었다. 아더 앤더슨은 채권단의 용역을 받았지만 철저하게 GM의 논리를 대변하는것 처럼 보였다. 조건 문제는 GM이 제시할 조건이었다. 작년 6월29일 포드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발표하면서 매각팀 관계자는 "GM의 조건이 10이었다면 포드는 100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포드가 좋은 조건을 내밀긴 했지만 그만큼 GM의 조건이 나빴다. 표면적으로는 70억달러 대 50억달러의 차이였다. 그러나 GM의 50억달러는 다만 "이런 저런 조건을 총족한다면 대우차의 가치는 50억달러 정도 될 것"이라는 모호한 수사학에 불과했다. 지금도 그런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GM이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선 것은 오 호근 의장과 홍콩에서의 만남 이후 무려 9개월이 지난 지난 6월부터였다. 당장 부평공장 처리문제가 걸림돌로 떠올랐다. GM은 군산,창원공장과 인도 이집트 베트남 공장 정도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고 인수 가격은 지금껏 1억달러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이 와중에 재경장관이 바뀌고 산은총재가 교체되고 오호근 의장이 사퇴했다. 그리고 대우차는 끝내 법정관리로 갔다. 법정관리를 반대하던 엄낙용 산은총재도 교체됐다. 대우차의 방황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 특별취재팀 -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