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채권으로 허덕이고 있는 일본 주요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조정해 금융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영국의 피치는 6일 발표한 성명에서 증시 침체로 은행들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즈호홀딩스 스미토모미쓰이 UFJ홀딩스 등 17개 일본 주요 은행들의 신용 등급을 낮춘다고 밝혔다. 또 이들 은행 대부분의 장기 신용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이날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역시 도쿄미쓰비시은행과 일부 생보사들의 재무건정성 등급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그간 추진해 온 금융 개혁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지난 3월 위기설을 무사히 넘겼던 일본이 다시 금융위기에 직면했다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연타 맞은 일본 은행들=이날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에 따라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미즈호홀딩스와 이에 속한 다이이치간교 후지 흥업은행 등은 모두 등급이 D에서 D/E로 내려갔다. 또 일본내 4위 은행그룹인 UFJ 산하의 산와 도카이 도쿄트러스트&뱅킹과 스미토모미쓰이은행의 등급도 D에서 D/E로 떨어졌다. D는 재정이 대내외적으로 취약한 상태를 의미하며 E는 재정이 매우 취약해 외부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등급이다. 한편 이날 무디스는 도쿄미쓰비시은행의 재무건전성 등급을 D+에서 D로 강등했다. 이는 무디스가 부여하는 최저등급에서 두단계 높은 수준이다. 무디스는 또 아사히상호생명과 미쓰이상호생명 등 생보사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고 두 회사의 신용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위기 재연 가능성=최근 불거진 일본의 9월 금융위기설이 이번 신용등급 강등 조치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은행권의 중간 결산기인 9월을 전후해 일본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진정한 금융위기가 일본 열도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게 위기설의 골자.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부실채권처리 작업이 점점 가파른 경사를 맞닥뜨리고 있다"고 입을 모으며 일본 은행 개혁에 대해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또 "부실채권이 처리된다 하더라도 은행 수익성의 악화라는 큰 장애물이 남아있다"며 "수익구조의 개선 없이는 일본 은행들의 전망은 어둡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처리는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해 온 금융개혁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용평가기관들의 지적이 현실화할 경우 위기가 정말로 닥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