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3시.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서울 논현로에 있는 한가네 가마솥곰탕집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회사 이삿짐을 나르고 뒤늦게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한 팀은 성지빌딩에 이사를 온 멀티리오의 직원들이었으며 다른 팀은 인근에 있는 장운빌딩에 이사온 인코피아 직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논현로로 이사를 온 인코피아는 멀티리오가 개발한 전사적 자원관리(ERP)시스템을 도입한 회사여서 이날 점심은 멀티리오의 오원순(36) 사장이 샀다. 최근 들어 이 2개 회사 외에도 논현로와 논현동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논현밸리'에는 벤처기업들이 속속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벤처밸리는 강남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테헤란로가 가라앉으면서 역삼로에서 논현동까지 남북을 가로지르는 논현로가 새 벤처밸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이후 두달동안 서울지역에서 벤처확인을 새로 받은 5백22개사 가운데 2백1개사가 이 논현지역에 입주한 것으로 나타나 이 지역이 새로운 밸리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지역 가운데서도 테크노빌리지(대표 장흥순)가 입주해있는 서울빌딩을 기점으로 지하철 7호선 학동역과 지하철 2호선 역삼역을 거쳐 두올정보기술(대표 이두원)이 들어있는 청화빌딩까지가 벤처기업들이 가장 많이 입주한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씨엔에스벤처빌딩을 비롯 삼정빌딩 성지빌딩 아주빌딩 서울벤처타운 아시아타워 청화빌딩 삼영빌딩 등 벤처기업들이 입주한 빌딩들로 이어진다. 논현로 중앙에 있는 청파빌딩에 입주한 리폼시스템(대표 이상근)은 이 지역을 벤처밸리로 선포하듯 '첨단소재부문 벤처기업대상 수상'이란 노란색 플래카드를 거리에 내걸어 자기 기업을 자랑하고 있다. 이 밸리에 입주한 대표적인 벤처기업은 아시아타워에 입주한 카네기연구소(대표 최염순)를 비롯 홍성빌딩에 입주한 아이디어파크(대표 양웅섭),서울벤처타운에 있는 지스코산업연구소(대표 이규형),아주빌딩에 들어있는 엠텍정보통신(대표 황태호) 등이다. 이날 여의도에서 이사를 온 멀티리오의 오원순사장은 논현밸리로 이사온 이유에 대해 "거래업체들이 대부분 강남지역에 소재하고 있는데다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삼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 아이디어파크의 양웅섭사장도 "강남역인근과 테헤란로 지역은 평당 월임대료가 5백만원에서 6백만원선에 이르는데 비해 논현밸리는 3백만원에서 4백만원선으로도 입주할 수 있는 곳이 많아 건실한 벤처업체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논현로에 있는 화원빌딩에 있는 반지하 사무실은 평당 1백90만원에도 입주가 가능할 정도로 낮은 가격의 사무실이 많다. 벤처기업들이 논현밸리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벤처에 거품이 꺼지면서 비싸고 화려한 사무실보다는 실속있는 사무실을 얻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하철 학동역과 역삼역이 가까이 있어 교통이 편리한 점도 유인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