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희망봉'으로 떠받들여져온 IT(정보기술) 산업이 세계적 수요 감퇴로 인해 되레 '수출 한국'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컴퓨터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의 수요 정체로,LCD(액정표시장치)는 국제 가격 하락 등으로 각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 IT 품목의 부진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 수요 감퇴와 단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실제 반도체와 컴퓨터 수출 비중은 지난해 말 23.5%에서 올 상반기 이미 18%로 떨어졌고 하반기에는 더욱 추락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한국 경제의 최전성기를 견인하며 한국의 간판 수출상품으로 승승장구했던 반도체는 자동차에 '1위 수출품목' 자리를 내주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 변천사를 살펴보면 해방 직후인 1940년대 후반에는 오징어 철광석 등이 수출품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60년대 초까지도 이런 추세가 계속됐다. 주력 수출상품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70년대. 섬유 합판 가발이 나란히 수출 1∼3위 품목으로 자리잡았고 전자제품 과자 신발 연초가 5∼8위 수출상품으로 떠올랐다. 80년대에는 선박 반도체 자동차 등 중공업 제품들이 10위권 안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수출은 79년 4억2천만달러에서 89년 40억2천만달러로 9배 이상 늘었다. 자동차는 85년에 10위 품목으로 올라섰다. 한국 대표상품으로 떠오른 반도체와 컴퓨터는 전세계 IT 붐을 타고 90년대 후반 '반도체 경기론'이 등장할 정도로 핵심 산업분야로 자리잡았다. 99년과 2000년 수출 1∼2위 품목을 반도체와 컴퓨터가 차지하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올들어 대표 수출주자에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IT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지난 6월부터 자동차가 반도체를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라선 것. 지난해까지 2위였던 컴퓨터도 자동차와 선박에 밀려 4위로 추락했다. 다만 반도체가 재도약할지, 자동차가 1위 자리를 고수할지를 지금 판단하기는 다소 이른 것으로 보인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