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그로기상태다. 1990년대는 증시침체, 경기후퇴, 땅값 하락 등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올들어 사정은 더 나빠지고 있어 21세기의 첫 10년도 '잃어버릴 10년'이 될 판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참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30일 일본경제는 또 한번 패배를 맛보았다. 도쿄증시의 닛케이주가는 1.9% 급락했고 6월 산업생산도 예상치의 2배인 0.7%나 줄었다는 정부발표가 나온 것이다. ◇ 10년 불황의 원인 =경제시스템 문제와 개혁의지 부족이 장기불황의 근본 원인이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교수등 해외 경제전문가들과 이코노미스트지(誌)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게 이 두가지다. 시스템문제에서는 우선 재무성(과거 대장성) 중심의 '관료주도형 성장구조'가 장기불황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관리가 산업정책을 짜고 기업들은 따라가는 이 구조는 경제가 좋을때는 잘 굴러간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가 전환기에 있거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이 구조가 오히려 성장을 가로막는다는게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도 문제다. 골드만삭스증권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일본기업들의 매출대비 순익비율이 미국경쟁사들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고 평가했다. 효율성이 낮은 일본기업들은 장기불황을 맞아 자생력을 잃고 있다. 또 그동안 일반 국민들은 정부의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유통시장 개방 거부로 값비싼 국산 물건을 사야하는 고비용 구조속에 놓여 있었다. 정부의 개혁의지 부족은 10년 불황의 또 다른 요인이다. 그동안 정치지도자들은 개혁시늉만 했다. 10년간 경기부양을 위해 1조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주가및 땅값 하락-은행부실채권 급증-기업도산 급증'의 구조적 결함을 치유할 근본적인 개혁은 하지 않았다. 정권연장과 인기를 위해 부실기업과 은행을 과감히 정리하지 않음으로써 부실의 꼬리만 키웠다. ◇ 빈사상태의 일본경제 =16년만의 최저 주가, 올해 마이너스 1.2% 성장 예상, 기업들의 감원과 실적악화 등 불황의 징후들은 빠짐없이 다 나타나고 있다. 30일 닛케이평균주가는 1만1천5백79엔으로 지난 89년12월29일의 사상최고치(3만8천9백15.87)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 1.4분기에 연율 마이너스 0.8%를 기록한 경제성장률은 올해 3년만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91년 버블경제 붕괴후 지속되고 있는 '침체-회복기미-재침체'의 고질적인 W자형 경기사이클이 일본경제의 현주소다. 일본의 간판 전자업체들도 실적악화로 신음중이다. 후지쓰는 지난 2.4분기에 5백54억엔의 손실을 기록, 전년동기에 비해 손실이 3배이상으로 늘었다. 마쓰시타전기는 이 기간중 30년만에 처음으로 적자(3백억엔)를 냈다. NEC의 순익은 8억엔으로 한해전에 비해 72%나 감소했다. 올들어 전자업계의 감원규모는 3만여명에 달한다. 1조9천억달러(GDP의 약 절반)로 추정되는 은행권의 막대한 부실채권이 정리되지 않는 한 일본경제의 조기회생은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채권정리는 당장 은행및 기업도산, 실직자 급증의 충격을 몰고 온다. 이 때문에 정부는 철저한 개혁을 머뭇거리고 있고 불황의 꼬리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