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계공장을 운영하는 한 제조업체의 사장부인이 한국경제신문사에 애절한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24일자 23면 "이치구 전문기자의 벤처스토리"에 나간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철창속 눈물"을 보고 보내온 이 e메일은 기계제조업을 하면서 휴가 한번 못가보고 죽도록 일했는데도 부도를 낸 뒤 원주구치소에 갇혀있는 삼진기계의 방종오 사장을 격려하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현재의 기업환경을 너무나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 편지는 한국 제조업계의 현실과 정책의 잘못을 애타는 마음으로 질타한다. 눈물을 훔치며 쓴 생생한 편지를 그대로 소개한다. --------------------------------------------------------------- 7월24일자 기사를 보고 e메일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의 애환이 한두번 소개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방 사장님 이야기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의 남편도 경기도에서 기계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시작한지 4년이 넘었지만 저 역시 남편에게서 월급봉투를 단 한번 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생활은 근근히 해왔습니다. 저의 남편과 직원들은 일요일은 거의 90% 이상 일하는 날,공휴일은 당연히 일하는 날로 알고 근무합니다. 평일에도 밤 10시 이후에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습니다. 철야도 자주합니다. 어쩌다 일요일 아침 조금 출근을 늦게 하려고 하면 바로 거래처에서 휴대폰이 울립니다. 납품했던 기계를 살펴보러 바로 출동을 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입니다. 그러니 저희 가족은 그 흔한 놀이공원에 4년이 넘는 결혼생활동안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월급을 못받는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열심히 정말 죽도록 일하고도 그나마 월급주기가 힘든 현실이 너무 애가 타서 이 글을 씁니다. 저렇게 속을 태우는 남편을 보면 우리 경제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견적의뢰가 들어와 밤을 새워 만들어 제출하면 감감 무소식입니다. 계약금을 10% 정도 받으면 그 계약금에 대해 보증을 서야합니다. 기계를 납품해도 받는 것은 6개월짜리 어음 아니면 순수외상이죠. 그 어음도 제도권에서 할인을 하려면 또 부동산 담보를 서야 합니다. 물론 제가 항상 "사장은 유노동 무임금"이라고 웃으며 얘기하지만 남편의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을까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남편이 요즘 진실로 힘들어하는 것은 기계 제조업이 이제 한국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군대로 치면 최전방 야전군입니다. 곧 중국산 기계들이 물밀 듯 들어올 것입니다. IMF상황이 도래했을때 그런 위기를 언론이나 정부보다 먼저 감지한 쪽은 남편처럼 전방에서 외로이 지키던 제조업자들이었습니다. 실물경기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니까요. 온갖 언론에서 '테헤란 밸리'의 호황을 보도할 때 남편은 자신이 기계공학과에 들어간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몸으로 부딪쳐 일하는 남편이 더 이상 희망을 감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절망'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저의 남편이 숙고끝에 사업을 접기로 한다면 저도 거기에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눈물과 괴로움은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글이 기사화되기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언론에서 현장감 있는 기사를 또 써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