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대표격인 전경련 회장은 역대 정권과 미묘한 긴장을 유지해왔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이기도 했다. 전경련은 1961년8월16일 재계가 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설립한 모임이다. 올해가 40돌. 초대 회장은 이병철 삼성 회장(61∼62년). 그 뒤 이정림(62∼64년) 김용완(64∼66년,69∼77년) 홍재선(66∼69년)등 기업인들이 2∼12대 회장을 지내면서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경련이 세인의 주목을 끈 것은 13∼17대 회장을 맡은 정주영 현대 회장(77∼87년)때부터. 80년대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권력과의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기도 했다. 정 회장은 5공초기 퇴진압력에 맞서 "나는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이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고 버텼다. 18대 구자경 LG 회장(87∼89년)은 단명이었다. 노사대립이 극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오너체제가 전경련을 끌고 가기도 쉽지 않았다. 비오너 출신인 유창순 전 부총리가 19,20대 회장(89∼93년)을 맡게됐다. YS정부 출범과 함께 전경련은 다시 오너 회장체제로 바뀌면서 정부와의 갈등도 잦아졌다. 21∼23대 최종현 SK 회장(93∼98년)은 선단식경영, 쌀개방 등을 놓고 관료들과 논쟁도 불사했다. "규제를 다 풀어라. 기업에 맡겨라"는 최 회장의 발언에 정부는 SK그룹 세무조사라는 칼을 빼들기도 했다. 또 청와대가 사과할 것을 요구해 재계 대표인 최종현 회장이 홍재형 부총리를 과천청사까지 직접 찾아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DJ정부에서 전경련을 이끌게 된 24,25대 김우중 회장(98∼99년)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왕성한 활동으로 전경련을 다시 재계의 중심으로 부상시켰다. 그러나 말썽 많던 빅딜과 5백억달러 무역흑자론 등으로 관료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켰고 그룹몰락과 함께 결국 불명예퇴진하게 된다. 26대 김각중 현 회장(경방 회장)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김 회장의 뒤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