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경영비리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24일 내린 선고 결과는 "전문 경영인의 책임 한도"를 제시한 것으로 볼수 있다. 사법부는 종래 전문 경영인에게는 "한국적 경영현실"을 고려,징역형과 함께 집행유예를 같이 선고하는 식으로 가벼운 처벌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우그룹 사건 재판부는 전문 경영인이 "고용"경영인이기는 하지만 소액주주 및 일반투자자 보호와 같은 사회적 책무도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를 방기한 부분에 대해 사법적 잣대를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분식회계와 관련해서도 법원은 피고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 근절 의지를 천명했다. 기아 자동차의 김선홍 전 회장이 대법원까지 가는 논란끝에 4년의 실형을 받는 전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같은 전근대적 행태가 남아 있는 것은 문제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분식회계는 관행"이라는 피고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부실대출로 이어지는 사기 행위"라는 검찰측 손을 들어줬다. 즉 분식회계는 단순하게 재무제표를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는 "범죄" 행위임을 분명히 적시한 것이다. 재판의 쟁점:각 회사별로 검찰의 기소내용이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재산국외도피" 부문과 "분식회계로 인한 대출사기"는 공통적으로 적용된 혐의다. 우선 "재산국외도피(41억달러)"부분에서 피고인들이 주로 항변한 내용은 대우그룹의 비밀금융조직으로 알려진 "BFC(British Finance Center)"의 성격이다. 피고인들은 BFC가 비자금이나 장부외자금을 위해 존재하는 비공식적인 계좌가 아니라 (주)대우의 공식 창구라고 해명했다. 따라서 국내로 송금해야할 대금이 BFC로 전달된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차입금을 변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 만큼 "재산국외도피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FC"의 성격에 대한 판단은 접어둔채 범죄의 구성요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했다. 즉 외환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회사의 회계에도 잡히지 않은 자금이 해외에 존재하는 BFC에 전달된 자체만으로도 유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분식회계에 의한 대출사기(10조원)"에 대해서도 대우측의 죄를 물었다. 가령 모 금융기관이 대우 자동차에 거액의 자금을 대출한 뒤 변제되지 않은 사건과 관련,피고측은 자동차 소유의 부동산과 수출보험공사의 보증을 담보로 맡긴 만큼 무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금융기관이 자동차의 자본잠식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대출을 안해줬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사기"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천문학적인 추징금: 재판부는 이날 실무를 맡은 임직원 등에게 사상 최대 액수인 26조4천1백80억여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41억달러 상당의 "국외재산도피"금액과 1백57억달러 상당의 "무허가 자금차입"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해태그룹 박건배 전 회장에게 1억원,대한생명 최순영 전 회장에게 1천9백여억원 등 경영주에게 외화 도피 등의 책임을 물려 추징금이 선고된 적은 있지만 실무를 맡은 임직원 등에게 거액의 추징금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회사의 재산 국외도피 등 불법행위에 대해 관여한 임직원 등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판례로 확립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피고인측 반응=피고인들의 변호사들은 이날 내려진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아직까지 공개적인 의견을 내놓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또 각자 변호한 피고인들이 어떤 형량을 받았는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 실형이 선고된 대우그룹 전 임원들의 변호인들은 금명간 피고인들을 만나 항소 여부 등 향후 대책을 숙의할 것으로 보인다. 집행유예를 받은 11명의 임직원들의 변호사들은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에 대해 안도하며 항소를 제기할지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