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등지의 간판급 기업들이 잇따라 감원과 공장폐쇄 등을 단행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불기 시작한 감원 바람이 잦아들 듯하더니 지난 6월 무렵부터 제2라운드에 돌입해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정보기술(IT) 업계가 주도적이긴 하지만 구조조정이 거의 전 산업부문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의 자동차부품 회사인 델파이오토모티브는 올들어 2천5백명을 줄인데 이어 하반기중 5천8백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세계 최대 PC업체인 델컴퓨터는 지난 2월 1천7백명의 감원을 발표한데 이어 지난 5월 3천∼4천명 추가감원 계획을 내놓았었다. 컴팩 IBM 쓰리콤 코닝 등도 올들어 1차 감원에 이은 추가감원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제조업만이 아니다. 미국 4위 항공사인 노스웨스트는 1천5백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식료품업체인 알버트슨은 1백65개 매장을 폐쇄하고 관리직의 20%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최근 전체 직원수의 5%에 해당하는 4천∼5천명을 추가 감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회사는 올초 1천6백명의 감원 결정을 한 바 있다. 이 회사는 2·4분기 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6% 줄어드는 등 정크본드(고수익 고위험채권) 투자 손실이 불어난 때문이라고 감원 배경을 설명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 엔지니어링업체인 스위스 ABB는 내년말까지 전체 인력의 8%에 해당하는 1만2천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24일 발표했다. 네덜란드 필립스는 6천명을 줄인데 이어 3천∼4천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내놓았다. 프랑스의 통신장비업체인 알카텔은 전세계에 가동중인 1백여개 공장을 매각해 '공장 없는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독일의 화학업체인 바스프도 14곳의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내놓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마쓰시타전기가 오는 9월부터 희망퇴직자를 모집키로 해 주목받았다. 종신 고용의 마지막 보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반도체 감산에 돌입한 후지쓰는 전체 인력의 21%인 9천명을 대상으로 조기퇴직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대만의 컴퓨터 선두업체인 에이서도 올들어 3천명을 감원했다. 싱가포르 최대 철강제조업체인 냇스틸은 생산직의 5분의 1인 1백30명을 줄이겠다는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의 삼성그룹도 최근 비수익 사업부의 분사 매각 통폐합 등을 통해 현재 인력의 10% 정도를 줄인다는 방침을 정했다. S&P의 이코노미스트인 리얀 브레트는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감원 발표가 계속될 전망"이라며 "직장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원을 구조조정의 제1수단으로 활용하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미국의 조직관리 컨설팅업체인 페르소나 인터내셔널의 존 곤스틴 대표는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기에 감원은 변화에 제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케 한다"며 "감원은 최후의 구조조정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