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불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벤처기업들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 벤처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고 정보통신과 직결되지 않는 분야인 DVR(디지털비디오레코더) 업계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DVR의 경우엔 한국 벤처기업들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확실하게 시장점유율을 다져온 비교우위 분야다. 따라서 DVR 업체들마저 불황의 늪에 깊게 빠질 경우엔 벤처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DVR는 디지털 압축기술을 바탕으로 동영상을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계장치다. 기존 아날로그 CCTV(폐쇄회로TV)를 대체하는 차세대 보안장비다. DVR 제조회사중 3R는 가장 먼저 지난해 7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등록)됐다. 이 코스닥기업은 1998년 2억원, 1999년 81억원, 2000년엔 2백65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등 급성장했다. 지난해만 해도 경상이익이 44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올 1.4분기 매출액은 31억원에 그쳤다. 이 분기에 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3R의 경우엔 상장(등록)기업이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대상에 오르고 경영상황도 비교적 상세히 공시된다. 그러나 비상장(등록)기업들의 경우엔 공시 자료는 없어도 전반적으로 올해 사정이 지난해와 비교해 봤을때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반 영세업체까지 합하면 한국에는 DVR 업체수는 1백개로 추산되고 있다. DVR 선발회사에 속하는 피카소정보통신의 김동영 대표는 "내수시장은 거의 전멸상태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말했다. 수요의 큰 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됐던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신규 시설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 김 사장의 진단이다. 피카소의 경우엔 수출 OEM에 주력해 그나마 불황 충격을 비켜 나가고 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시장에서도 당초 기대 만큼은 주문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제품경쟁력을 자랑해온 DVR 회사인 훠앤시스는 미국 펠코사에 1년동안 5백만달러 어치의 DVR를 수출키로 지난해 하반기 계약을 맺었으나 올 상반기까지 실제로 2백만달러 어치를 선적하는데 그쳤다. 박태서 훠앤시스 전략기획팀장은 "미국에서 CCTV에서 DVR로 전환하는 속도가 기대보다는 느린 상태"라고 분석했다. 코스닥 등록을 신청해 놓은 아이디스는 올해 매출목표로 2백40억원을 잡았다. 노현철 아이디스 경영기획팀장은 "미국의 경기둔화로 인해 매출 목표치 달성을 1백%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DVR 업체들은 새 시장 개척에 혈안이 됐다. 3R과 훠앤시스는 중국과 대만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성과를 최근 거두었다. 3R는 지난달 중국업체와 DVR 및 초단파전송장비 등 2백17억원 어치를 수출키로 계약을 맺었다. 훠앤시스는 대만 릴리그룹에 2백만달러 어치를 공급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증권의 김희연 애널리스트는 "DVR 시장이 향후 개인 보안시장으로 확대될 경우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은 큰 편"이라며 "이번 고비를 넘기는 기업들은 세계적인 DVR 업체로 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