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중국 베이징(北京)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컨벤션센터를 연상케 했다. 12일부터 1주일동안 열린 "베이징 국제주(國際周)" 행사 때문이었다. 각종 전시회 세미나 투자상담회 기술교류회 등이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국내외 정보기술업체 2천2백개가 참가한 전시회에는 약 53만명이 다녀갔고, 세미나 참석 인원은 2만명을 넘어섰다. 시내 고급 호텔은 행사 참가를 위해 몰려든 외국인으로 빈방이 없을 정도였다. 국제주 행사 마지막 날인 16일 '베이징 국제주 투자 조인식'이 열렸다. 이날 일괄 체결된 투자 건수는 8백23개, 계약액은 74억달러에 달했다. 베이징의 언론들이 '1주일 동안 끌어들인 외국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국제주 행사 2개월 후 인 지난 7월 17일. 예전(葉展)국가통계국 대변인이 내외신 기자를 만났다. 상반기 중국 경제 상황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외국인투자를 설명하며 "또 다시 중국 투자 러시다"라고 말했다. 그가 밝힌 올 상반기 중국의 실제 외국인 직접 투자액은 2백6억9천만달러.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5% 늘었다. 투자계약은 3백34억달러로 38.2% 증가했다. 2개월 전 국제주 행사 때 이뤄진 계약이 고스란히 수치에 반영된 것이다. 예 대변인의 말대로 중국에는 지금 제3차 외국인 투자 러시가 일고 있다. 제1차 붐은 80년대 초였다. 죽의 장막이 열리면서 화교자본을 중심으로 외국자금이 몰렸다. 2차는 지난 9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남부 개방도시를 돌며 개혁개방을 역설) 시기. 그 해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1백10억달러로 전해보다 세배 가량 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제3차 러시의 배경은 세계무역기구(WTO)다. "미국 유럽 등 서방 기업들은 그동안 투명성이 낮다는 이유로 중국 투자에 신중했습니다. 그러나 WTO 가입으로 중국이 '국제 깡패'에서 '신사'로 바뀔 거라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미뤘던 투자에 나선 겁니다. 베이징올림픽 유치로 중국 투자 열기는 더 뜨거워질 것입니다" 판원칭(潘文卿) 칭화(淸華)대 교수의 말이다. 제3차 투자 러시는 규모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동안의 투자가 중국의 임금을 노린 제조업 투자가 많았다면 이제는 중국의 시장을 겨냥한 내수형 투자가 늘었다. 판 교수는 "지난해 들어 정보통신 부동산 유통 서비스 등 내수성장 분야에 외국인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며 "서방기업은 20여년 동안의 경제발전으로 형성된 중국시장의 과실을 따먹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내수 시장은 폭발 직전이다. 현재 이동전화 이용자수는 약 1억1천만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 말 1억3천만명을 돌파, 미국을 제치고 최대 이동전화 시장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PC시장은 지난해 45% 성장, 정보기술 산업의 급팽창을 보여줬다. 부동산 시장(투자기준)은 내 집 마련 붐에 힘입어 연 25%의 속도로, 자동차 시장(판매대수 기준)은 동부연안의 마이카 열기로 15%씩 확대되고 있다. 특히 외국기업의 주요 투자분야인 첨단기술 및 전문 서비스, 고급 제품 시장은 끝없이 확대되고 있다. 구매력을 가진 고급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8백40달러로 낮다. 그러나 인구의 약 5%(약 6천만여명)에 해당하는 고소득자는 우리나라 중산층 이상의 구매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도 중국이 나 홀로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이 시장을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평을 끝없이 넓혀가고 있는 시장, 이를 노리고 뛰어드는 외국기술 및 자본이 중국경제를 힘차게 돌리고 있는 성장엔진이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