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FEER)는 26일자 최신호에서 올 하반기 미국 하이테크산업의 회복에 의문을 제기하며 아시아가 미국의 도움을 받아 경기를 되살리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FEER은 최근 경기에 관한 악재들이 쉬지않고 흘러나오고 있다며 특히 반도체 매출이 지난 5월 중 20%나 급락하고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중국의 수출이 줄어든 점을 지적했다. FEER은 미국의 경기가 금리 인하와 세금 감면 조치에 힘입어 곧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한 반면 하이테크 분야의 소비지출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이테크 수요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투자패턴이 바뀔 것이며 PC 등 하드웨어 제품을 주로 수출하는 아시아로서는 더 이상 미국 경제로부터 수혜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보도는 전했다. 지난 1999년에는 저금리와 주식시장의 활황,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불안 등이 겹쳐 하이테크 산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국의 수많은 업체들이 이 기간에 아시아에서 생산된 하드웨어 제품들을 구입했으며 이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로부터 좀 더 빨리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당분간 하이테크의 신기술수요가 증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모건 스탠리 딘위터 증권의 스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기업들이 '버블'시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하이테크 제품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미국의 컴퓨터 및 전자제품 수요는 1년 전에 비해 35.5%나 감소했다. 이로 인해 미국 시장에 주요 생산품인 하이테크제품을 수출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 침체를 경험했으며 경제 성장률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반도체 가격의 하락은 이들 국가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한 예로 2000년 1월과 2001년 7월사이 64메가 D램 가격은 개당 8.93달러에서 무려 90%나 폭락한 0.92달러에 거래됐다.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이 이같은 경험을 한 주요 국가들이라고 FEER은 지적했다. 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의 동 타오 수석 지역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의수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가 앞으로도 수출 급락의 충격을 더 겪을 것"이라고 우려하며 "올 3.4분기에 이 같은 현상이 매우 심각하게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한해 동안 아시아의 수출 규모가 작년에 비해 30-40% 감소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전체 수출 중 50% 이상을 전자제품이 차지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이미 침체에 빠져있다. 대만 역시 싱가포르의 뒤를 따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아시아 정부들은 미국 기업들의 수익이 올 하반기에 회복해 내년 초쯤에는 투자 지출 규모가 증가할 것이라는 데 강한 기대를 걸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6회에 걸친 금리인하와 더불어 세금감면으로 약 400억달러의 자금이 민간에 반환돼 경제 촉진을 야기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리먼브라더스 증권의 스티븐 슬리퍼 책임 이코노미스트는 "경험 상 세금 납입자들은 반환된 세금 중 약 50%를 소비하는 성향이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약 0.8% 더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아시아 각국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미국 경제가 하루속히 반등해 기업 수익이 호전되고 이에 따라 아시아 지역의 수출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프리드리히 우 무역산업장관은 "아시아 전자제품에 대한 미국 내의 수요가 앞으로 약 9개월 간은 회복세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UBS워버그의 쥴리 허드슨 전략가는 "반도체 분야의 투자 회복세를 보려면 앞으로 1-2년은 기다려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테크 제품에 대한 수요가 회복될 경우 관련업체들은 이를 실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내외의 압력을 받을 것이고 이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소프트웨어관련 지출에 더 치중할 것이다. 그러나 PC산업에 집중된 아시아의 하이테크 부문은 업체들의 실적을 가시적으로 향상시킬 만한 것이 못돼 투자의 우선순위는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아시아의 경기 전망은 매우 암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만,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들은 경제 구조가 전자제품 제조 부문에 너무 집중돼 있어 테크놀러지 변동에 너무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자본재 수입이 급격히 감소해 해외 경제에 너무 쉽게 노출된 경제의 취약한 구조를 당장 고칠 여력도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제 위기가 지난 1997-1998년 아시아를 강타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오래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