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이 그나마 빨리 포기해 주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거야" 이헌재 전(前) 금감위원장은 2년 전 대우처리 과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최근 구조조정 논란을 빚고 있는 모 그룹과 직접 비교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작년 8월 재경부장관에서 물러난 뒤 강남 선릉역 인근의 윤익 오피스텔에 개인사무실을 냈다. '구조조정의 전도사'에다 '금융 황제' 등의 별명으로 불리던 그였다. 월스트리트등 해외에서 더 높이 평가받던 그였지만 이제는 본인이 즐겨쓰는 표현대로 다시 '낭인'으로 되돌아갔다. 일고여덟개의 직업을 전전한 끝에 위원장, 장관을 거쳤고 다시 갈곳이 마땅찮아진 처지가 됐다. 지난 6월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자문기구로 만든 중소기업경영전략위원회 초대 위원장(비상근)을 맡아 공식 활동을 재개했다. 오호수 증권업협회장 등 절친한 친구들이나 장관 시절 같이 일했던 관료들, 그리고 문화계 인사들까지 두루 만나고 있다. 해외출장도 잦아 사무실을 비울 때가 더 많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아직도 그를 찾는다. 비가 내리던 지난 7월초 어느날 오후 늦게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인터폰을 누르자 저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직접 "누구요"라며 문을 열었다. 그와는 금감위원장 시절 출입기자로 익히 알던 사이. "왜 왔어. 기자는 아무도 안만나. 인터뷰도 안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밀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원래 목소리 톤이 낮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야.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점만 말할테고…" -대우 처리에 만족하는가. "그거야 정교한 해법이었지" 이 위원장의 말이 다소 본격적인 어투로 바뀌었다. "대우 빚이 무려 1백조원에 달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돼. 대우 부채를 국내채권 해외채권 시장채권으로 나누는것이 첫 단계였어. 각기 워크아웃, 바이아웃, 단계별 환매로 분할 처리했지" 그가 말하는 바이아웃은 자산관리공사 일괄매입, 단계별 환매는 그 말썽 많았던 대우채 처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아니었다면 충격이 대단했을 거야. 그 덕에 지금 대우조선이나 종합기계 대우건설이 제대로 굴러가잖아" -김 회장이 계속 해외에 머무르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스스로 약속한 것도 있고 해서 아마 창피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자가 만난 대우사람들도 할 말이 많았다. 대우사람들은 '정부가 김 회장의 입국을 지금껏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어.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야"라며 서둘러 말문을 닫았다. 일어서는 기자에게 "(김 회장이) 대우차는 제대로 살려보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커"라며 등을 두드렸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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