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제지의 고급백판지 생산설비(3호기)가 골칫덩어리에서 효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 기기는 화장품이나 담배 케이스 등에 쓰이는 고급백판지 생산기계.산업용지의 고급화를 예측한 한창제지가 93년 6백억원을 투입해 설치한 국내 최초의 고급백판지 생산라인이다. 초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산업용지 고급화가 진척되지 않아 기계를 놀리기 일쑤였다. 생산해도 수요가 많지 않아 덤핑으로 파는 것이 다반사였다. 한창제지는 이 설비의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것 등이 원인이 돼 98년10월 워크아웃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불효자가 평생 불효자는 아니었다. 98년말부터 담배인삼공사에 담배 케이스 용지를 한창제지가 공급하기 시작했다. 원화가치 폭락으로 담배인삼공사가 구매처를 해외업체에서 국내업체로 돌리는 과정에서 한창제지가 수주한 것이다. 한창제지는 올초 담배인삼공사와 공급계약을 2년 연장했다. 현재 이 설비는 담배 케이스로만 월평균 1천t을 생산하고 있다. 산업용지 고급화도 서서히 진척되기 시작했다. 외식산업이 팽창하며 롯데리아 등에서 한창제지 3호기에서 만들어진 고급백판지를 쓰기 시작했다. 두산에서도 소주 박스 포장용지를 한창제지에 의뢰했으며 롯데제과에서 자일리톨 껌 포장지로도 채택됐다. 회사측은 고급백판지 내수시장의 80%이상을 3호기가 점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창제지는 3호기의 호조 등에 힘입어 올 상반기 1백15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회사측은 이런 추세라면 내년께 워크아웃 조기졸업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고급백판지의 마진이 이처럼 높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제지업체가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한창제지의 고민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