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은 나날이 커지는데 우리가 팔 수있는 상품은 되레 줄어들고 있다.웬만한 상품은 "이런 건 우리도 있다"는 식의 면박만 당한다"(이송 KOTRA 상하이 대표처장) "한국에서 안 팔리는 물건은 중국에서도 안 팔린다"(손진방 LG전자 톈진법인장) 중국진출 전략을 다시 짜야한다는 지적이 한국기업의 현지 주재원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WTO가입을 앞두고 한국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현지 진출을 추진하고 있으나 "물량떼기" 위주의 종전 방식에 벗어나지 못해 현지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한국상품이 중국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은 수출증가율 둔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올 상반기 한국의 대중 수출은 75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의 수입증가율 14%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중국시장에서 한국상품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는 10월부터는 관세장벽이 없어진다. 자동차 1백%,전자제품 23.5% 등 수입품에 부과하는 차별관세가 폐지되거나 대폭 낮아진다. 다국적 기업이 중국 전역으로 밀려들 게 뻔하다. 한국기업들은 브랜드 인지도와 자금력에서는 다국적 기업에 밀리고 가격경쟁력에선 로컬기업에 뒤져 목표시장을 설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중국진출 전략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이제 저가시장이 아니다=현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주문한다. 손진방 LG전자 톈진법인장은 "상하이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만도 3백여개에 달하다"며 "이들이 세계 일류상품을 쏟아내기 때문에 한국에서 철(유행) 지난 물건을 들고 갔다가는 망신 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실례로 삼성전자는 지난 90년대 후반까지 중저가 제품으로 로컬제품과 직접 경쟁하면서 브랜드 홍보는 거의 하지 않고 양적 팽창에 주력하다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97년 중국의 관영 TV방송인 CCTV가 삼성전자 AS 문제점을 보도해 큰 타격을 입었던 것. 삼성은 임원진을 교체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으나 2년간 고전했다. 삼성이 지난해부터 중국 전역에서 SAMSUGN DIGITall이라는 국내와 똑같은 브랜드이미지 광고를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중국전자총괄의 마케팅담당 한창호 부장도 "중국을 저가상품 시장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삼성전자 애니콜의 사례에서 보듯 중국에서도 이제는 비싼 고급 제품이 오히려 더 잘 팔린다"고 덧붙였다. 실례로 삼성전자는 애니콜 듀얼폴더를 앞세워 중국의 고가 휴대폰 단말기 시장에서 선두업체로 올라섰다. 애니콜의 경우 중저가 모델군에서는 노키아 모토로라 제품에 밀리지만 6천8백위안(약 1백만원)짜리 고급제품은 중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한탕주의는 더이상 안 통한다=LG전자 중국지주회사의 노용악 부회장은 "국내기업의 중국사업은 여전히 일회성 한탕주의가 많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저임 노동력만을 겨냥,단기간내 투자자본을 회수하겠다는 생각에 30만달러 안팎의 소자본으로 중국에 들어오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이같은 방식이 통했다.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면 돈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중국의 기술력이 향상되고 소비자들의 눈이 높아진 때문이다. LG전자 톈진공장의 이철재 생산총괄부장은 "재료비는 국내에 비해 10% 적게 들지만 가격은 50~60% 낮춰야 팔리기 때문에 마진이 박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키아나 모토로라 등 다국적 기업의 경우 집중적인 대중 투자로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어 이들에게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리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의 내수시장을 겨냥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모토로라의 경우 해외 총투자의 13%를 중국에 밀어넣었다. 금액으로는 40억달러(약 5조2천억원)에 달한다. 지금까지 한국업체들이 중국에 투자한 총액(47억달러)과 맞먹는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장기적 플랜을 세워 전략분야에 집중투자하는 길밖에 없다. 상하이=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