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의 대응전략 (하) - 특화전략으로 이긴다 ] 신세계 이마트 서울 가양점.지난해 3월 문을 연 이 할인점의 1층 매장에 들어서면 깔끔한 인테리어,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1m50㎝를 넘지 않는 진열대가 백화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할인점의 원조라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m가 넘는 높은 진열대, 박스채 쌓여 있는 상품, 공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천장과 벽면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창고형 할인점'들의 정경과는 판이하다. 이마트는 값싸고 질좋은 상품을 찾으면서도 매장분위기까지 따지는 한국인들의 쇼핑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 1층 매장 중앙의 고객쉼터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면 고무 매트리스가 깔린 5평 남짓한 어린이 놀이터가 눈길을 잡는다.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유아 휴게실'이란 푯말이 붙은 아늑한 방이 나타난다. 이마트 가양점 전태현 점장은 "우리나라 쇼핑객들은 서구에 비해 여러가지를 따지기 때문에 서비스가 정교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할인점도 고객 편의시설이나 인테리어를 백화점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손님을 끌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한국토양에 맞는 서비스로 1라운드 판정승 =신세계는 지난 93년 이마트 창동점을 열면서 국내에서 가장 먼저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창동점장을 맡았던 이마트 정오묵 상무는 "초기에는 매장운영 상품발주 재고관리 물류시스템 등을 외국업체로부터 모방하는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으로 프랑스 까르푸와 미국 월마트가 한국시장에 들어오면서 이마트를 비롯한 토종 할인점과 외국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외국계 할인점들의 파상공세에 맞서 이마트가 고안한 대응전략은 '소비자 성향에 맞는 한국형 할인점의 모델을 만든다'는 것. 소비자의 키보다 훨씬 높았던 진열대를 낮추고 창고같던 매장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바꿨다. 까르푸나 월마트가 자신들의 장기대로 가전제품 저가전략 등에 치중하는 동안 이마트는 식품매장 차별화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인의 고유한 식생활과 조리법을 철저하게 배려해 야채나 생선의 신선도를 최고수준으로 높이고 매장에서 간단한 식사까지 할 수 있도록 푸드코트(food court)를 설치했다. 이같은 차별화 전략 덕분에 이마트는 외국계를 따돌리고 할인점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연승 선임연구원은 "월마트나 까르푸의 경우엔 표준화된 매뉴얼이 있어 각 지역 사정에 맞는 섬세한 토착화 전략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마트가 외국에서 들여온 유통업태인 할인점을 한국식으로 적절하게 변형시킨 것이 1위를 달리게된 원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 외국계 반격으로 2라운드 시작 =할인점 경쟁 1라운드에서 판정패를 당한 외국계 할인점들은 한국 할인점 시장 규모가 지난해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데 고무돼 야심적인 2라운드를 준비중이다. 2라운드에서 주목받는 외국계는 영국 1위의 소매업체인 테스코가 삼성물산과 손잡고(지분 테스코 81%, 삼성 19%) 설립한 삼성테스코. 프랑스의 까르푸는 1라운드에 별 재미를 못봤는 데도 지방진출을 확대하는 등 절치부심하고 있다. 올 5월 한국을 직접 찾은 영국 테스코의 테리 리히 회장은 "2005년까지 연 평균 7천억원씩을 투자, 현재 7개인 점포수를 55개로 늘리는 공격적인 확장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까르푸도 내년에 광주 군산 안산 등 9개 지방 점포를 오픈하는 것을 비롯 2005년까지 점포수를 40개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 98년 7월 국내 유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란 관심속에 한국에 상륙했던 월마트는 한발짝 물러서 있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이마트는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신속한 의사결정, 한국형 매장운영 등 특화 전략을 통해 현재까진 승리를 해왔다"고 평가하고 "이마트 등 국내 할인점들이 2라운드에서 승리할 경우 중국 등 해외로 눈을 돌려 다국적화하는 전략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 한국언론재단 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