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일하기가 짜증나기는 정작 공무원 자신들도 마찬가지다. 부처가 잘개 찢어져 있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고, 특정 사안을 놓고 몇군데 부처가 서로 자신들의 소관분야라고 주장하고 나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IT(정보기술) 진흥시책을 놓고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밥그릇" 싸움을 벌인게 단적인 예다. 이같은 "부처 할거주의"와 "경제부처 과잉"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은 한국경제신문이 5급 이상 공무원 1백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1 경제관료 의식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하게 확인됐다. 정부조직 다시 짜야 =정부 부처가 지나치게 잘게 나뉘어져 있어 정책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답한 공무원은 64.2%에 달했다. '아니다'라는 대답은 27.9%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는 국민의 정부 들어 여러차례에 걸쳐 단행된 정부조직 개편이 대체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폐합이 시급한 정부 부처로는 '산자부.정통부.과기부의 통합'(1백16명.중복응답)을 꼽는 공무원이 가장 많았다. '금감위와 금감원의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1백12명)거나 '재경부와 기획예산처의 통합'(97명)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의 통합'(92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어정쩡한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는게 공무원들의 목소리다. 올들어 두 기구의 역할 분담이 새로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경제관료들의 인식이다.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도 합쳐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일부 경제 관료들은 세제와 예산이 분리.운영되는 나라는 드물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재경부와 금감위 통합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융' 정책이 재경부와 금감위에 이중으로 걸쳐 있어 혼란을 준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재경부에서 금융부문을 떼내 금감위에 통합하는,소위 '금융부'를 만들자는 주장도 폈다. 여전히 비대한 공무원 조직 =공무원 조직과 관련, 경제관료들은 공직사회에 아직도 구조조정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절반이 넘는 공무원(53.3%)들은 '공무원 수가 적지 않다'고 답했다. '공무원 수가 적다'는 대답은 32.1%에 불과했다.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50.3%)가 '아니다'(39.4%)보다 많았다. 공무원 인사적체 해소 방안으로 61.8%의 공무원들이 '민간기업.공기업 및 금융기관 전출'을 희망했다. '공무원이 사회의 다른 분야 인력에 비해 경쟁력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있다'(47.3%) '비슷하다'(31.5%) '경쟁력이 떨어진다'(18.2%) 순으로 나타나 공무원 조직이 다른 조직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평했다. 가장 비효율적인 부처 =공무원들이 뽑은 최악의 정부 부처로는 보건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가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공무원들은 정책결정 및 업무처리에서 가장 경쟁력이 없는 부처로 보건복지부(60명) 교육부(37명) 산자부(34명) 재경부(24명) 등의 순으로 꼽았다. 공무원들 역시 의료개혁이나 교육정책의 혼선에 따른 국민적 불편을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개방형 직위제도 및 공무원 평가제도 미흡 =개방형 직위제도에 대해서는 77.6%가 "실패했다"고 대답했다. "성공했다"로 평가한 공무원은 0.6%에 불과했다. 계약직제 공무원 임용제도는 "개방형 직위제에 비해 성공적"(47.9%) "완전 실패했다"(40.4%) 등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성공했다"는 평가는 10.3%에 그쳤다. 개방형.계약직 임용제도의 실패 이유로는 "탁상행정에서 비롯한 제도이기 때문"(43.6%) "낮은 보수로 민간 전문가의 지원율 저조"(35.2%) "임용된 인사의 낮은 적응도"(10.3%) 등을 들었다. 민간 전문가를 공직사회에 수혈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높은 보수로 지원율 제고"(37.0%) "하위직을 우선적으로 충원"(21.8%)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공무원은 전문직이므로 민간 전문가 수혈은 비효율적"(14.5%)이라는 응답도 다수 있었다. 공무원 평가제도 =응답자의 82.4%는 성과급 지급이나 목표관리제 등 공무원 평가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은 "공무원 평가제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67.3%) "평가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15.1%) 등으로 문제점을 지적, 연공서열에 의한 평가나 주관적 평가에 불만을 드러냈다. 설문에 응한 공무원 대다수는 아직까지 보직이나 인사 등과 관련해 정확한 평가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평가가 아직도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공무원 평가체제는 형식적이다. 승진이나 인사 이동 등에서는 나눠먹기식이 오래된 관행으로 정착해 있다"(26년차 이사관) "소위 인기있는 분야 담당자만이 고생한다는 선입감이 문제다. 아주 보잘 것 없는 부속도 하나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는 필수적 요소임을 인식해 달라"(8년차 사무관)고 공무원들은 말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