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일류벤처가 양질의 외자를 끌어들인다 ] 지난 5월 미국 LA에서 전세계 게임전문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게임계 신(神)과 같은 존재로 통하는 리처드 게리엇과 로버트 게리엇 형제가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이날 한국의 엔씨소프트(사장 김택진)라는 조그만 벤처에 소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발표, 기자들은 깜짝 놀라게 했다. 왜 하필이면 코리아,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엔씨소프트라는 회사에 자신들을 투자하는지 기자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온라인 게임 인프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13만명이 동시에 접속해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나라는 코리아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겐 너무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한국판에서 성공해야 우리들의 입지가 확고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벤처의 브랜드파워에 매료된 외국기업들도 있다.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위성방송 수신기를 생산하는 국내업체인 휴맥스는 지난달 스웨덴의 한 업체로부터 이색주문을 받았다. 휴맥스라는 브랜드를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투자해 휴맥스 노르딕이란 업체를 세우겠다고 제안했다. 변대규 사장은 그렇다면 일부를 투자해 공동 기업을 만들자고 답했다. 엔씨소프트와 휴맥스는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면 손잡으려는 글로벌 투자파트너는 널려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 IT(정보기술) 시장의 테스트 베드(실험대)다' IT벤처업계 사람들이 자주 내뱉는 말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보기술과 시장이 한국만큼 성장한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통신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다. 미국의 경영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아날로그시대 제조업분야에서 한국의 스승이었던 일본이 한국 디지털 벤처들의 질주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는 식으로 한국 IT벤처 파워를 높이 평가했다. 요컨대 IT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아주 매력있는 나라다. 이런 곳에 세계 일류인력과 투자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업계관계자들은 진단한다. 정보통신부 장관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거물급 외국인 IT투자가나 기업들, 외국 정부관계자들이 찾아든다. "외국인들은 한국정부의 IT 진흥성과에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 IT는 정부 대 정부 베이스로 이뤄지는 사업도 많을 뿐더러 정부의 기반시설 투자 없이 민간의 활력만으론 절대로 세계일류로 클 수 없는 분야입니다"(노희도 정보통신부 국제협력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만 해도 최근 3년새 한국을 6번씩이나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은 세계 IT비즈니스의 '대박시장'중 하나다. 외국의 첨단기술이 한국시장에서 처음 선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 상품이나 기술은 별볼일 없다'는 말도 나돌 정도다. 최근 한국 IT벤처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흔히 '공장을 짓는 전통 제조업의 직접투자'와는 뚜렷이 다른 성향을 보인다. 대부분 기술개발과 고급인력 양성에 집중한다. 다국적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조는 중국이나 동남아의 인건비 싼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첨단벤처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고용창출효과는 기대 이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IT를 중심으로 국내 일류벤처들이 외국인 투자유치의 가장 앞선 단계를 달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제조분야 합작단계를 어느새 뛰어넘어 R&D(연구개발)는 물론 '사람키우기'까지 외국계와 손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일류벤처들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김용규 정보통신 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들 한국의 파이어니어는 다국적 합작파트너와 손잡고 세계시장을 겨냥한다. 지능형 네트워크 및 인터넷 솔루션 업체인 엔에스텍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 회사는 미국 컴팩사로부터 20억원을 유치했다. 컴팩은 이 회사의 특허기술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했다. 앞으로 컴팩측과 연구개발, 마케팅뿐만 아니라 관련 인력양성 프로그램까지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글로벌 합작전략을 세우고 있다. 휴대용 단말기에 들어가는 게임을 개발한 지오인터액티브도 미국 인텔사로부터 2백만달러의 투자를 받은 업체다. 물론 조건은 한국이 무대가 아닌 외국 시장에의 공동 참여였다. "IT분야에서 헐값매각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양질의 외자를 끌어들이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우리 IT군단들은 앞으로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입니다"(장윤종 산업연구원 디지털실장) 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 한국언론재단 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