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52) 사라콤 사장은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항해통신장비 시장을 개척한 의지의 기업인이다. 그는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바다생활을 경험삼아 선박음향신호기와 해상조난안전시스템(GMDSS) 등을 개발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항해통신장비의 개척자'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 임 사장의 사업 준비는 뱃생활에서부터 시작됐다. 해양대 기관학과를 졸업한 그는 항해중 고장난 기계를 고치려고 할 때마다 대부분 외국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반드시 내 손으로 국산화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를 위해 배에서의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항해장비를 수시로 조정하고 점검했다. 임 사장은 지난 84년 항해 경력 10년을 채운 뒤 배에서 내려왔다. 선박장비 보수회사를 인수한 뒤 선박음향신호기 개발에 나섰다. 선박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중요장비인 만큼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제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낮과 밤을 연구실에 반납한지 1년만에 음향신호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개발보다 마케팅이 더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즉시 영업전략을 수정했다. 일단 배에 무상으로 장착한 뒤 고장나지 않고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확인되면 대금을 받겠다는 조건으로 판매에 들어갔다. 장비 설치 한달만에 선주들의 입이 벌어졌다. 음향신호기의 성능이 우수한데다 가격도 30% 이상 싼 사실이 알려져서였다. 물론 주문이 쇄도했다. 출시한지 3년만에 국내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할 수 있었다. 결국 외국 업체는 '경쟁 포기'를 선언한 뒤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렸다. 임 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국책사업으로 개발하다가 중단한 GMDSS장비 개발에 사운을 걸기로 했다. 이 장비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항해중인 선박의 위치를 전달해 주는 첨단 장치. 선박의 안전 확보에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 셈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모든 선박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마련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주위에서는 개발에 나서지 말라는 애정어린 충고가 쏟아졌다. 국내의 기술수준이 형편없이 낮은데다 일본과 덴마크만이 개발할 정도로 고난도 기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와중에도 임 사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일본과 덴마크의 관련 업체에 기술 협력을 요청했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난감해 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93년 러시아가 붕괴되자마자 러시아 과학자들을 스카우트, 개발에 착수했다.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비로 투자했다. 무려 5년간의 사투 끝에 98년초 위성통신단말기, 비상위치표시기 등 7종으로 구성된 최첨단 GMDSS 장비를 개발했다. 일본과 덴마크제품에 비해 품질이 뒤지지 않고 가격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덕택에 98년 국산신기술로 인정받고 국제해사위성기구로부터 국제형식승인도 취득했다. 임 사장에게 다른 기쁜 소식도 찾아왔다. 국제해사기구가 99년 2월부터 바다를 항해하는 3백t 이상의 모든 선박에 GMDSS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결정했다는 뉴스였다. 당장 수요가 폭발했다. 제품의 우수성이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러시아에 첫 수출이 이뤄졌다. 이어 중국 등에도 팔았다. 98년에 5백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연간 1백5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발생했다.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은 12% 수준. 이처럼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사라콤은 지난해 7월 부산 벤처기업으론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할 수 있었다. 임 사장은 최근 종합통신 방송장비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4월 디지털 방송국용 송신기와 중계기를 개발, 부산방송에 납품키로 했다. 6월 초에는 중기청으로부터 신지식인 칭호까지 얻는 영예를 얻었다. 임 사장은 "세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로 올해 매출 3백억원, 2005년까지 1천2백억원을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051)6009-051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