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수면아래로 잠복했던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국제금융시장의 화두(話頭)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미국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채택한 국가는 파나마, 에콰도르를 포함해 10여개국에 이른다. 최근에는 페소화를 달러화와 유로화에 고정시키는 태환법안을 채택한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칠레 등에서도 달러라이제이션을 검토중이다. 외환위기 직후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제기됐던 우리나라도 최근 미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베로 교수가 위기재발 방지차원에서 원화를 포기하고 달러화를 공식통화로 삼을 것을 제안한 것을 계기로 다시 힘을 얻고 있다. ◇ 달러라이제이션이란 =일반적으로 달러라이제이션은 두가지 의미로 혼용돼 왔다. 하나는 국내 통화수요에서 달러화 사용비중이 늘어나다가 마지막에 가서 해당국 통화를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 높은 물가에 시달려온 중남미 지역에서 달러화 대체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도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완전한 통화동맹을 결성, 달러화를 법화(legal tender)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파나마 등 중남미 국가들의 달러라이제이션은 이런 각도에서 추진되고 있다. 물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화동맹 결성 이전에 달러화 사용비중이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 달러라이제이션의 득과 실 =어떤 국가가 달러라이제이션을 도입하면 사실상 독자적인 화폐발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물가와 통화가치가 안정된다. 자연 투기적인 요인이 줄어들면서 경제 전반의 안정성과 대외신인도가 제고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개도국들은 글로벌 추세에 적극 부응하고 외자도입이 유리해지는 이점도 기대된다. 반면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에 예속돼 정체성(identity)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독자적인 화폐발행이 불가능해 짐에 따라 일종의 조세수입으로 간주할 수 있는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이 소멸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된다. 동시에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은행 스스로 파산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해 은행이 파산하게 되면 중앙은행에 의한 구제(bail out)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국제통화질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중에서 단일통화 도입논의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는 "어느 한 국가가 달러라이제이션를 채택하면 소수 통화에 대한 집중과 통화동맹의 확대현상(fewer currencies and more currency unions)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중남미 국가에서는 달러화 사용이 보편화돼 있다.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모든 예금의 60% 이상을 달러화가 차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도 달러화 사용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개도국을 대신해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개도국들도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국민저항 축소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달러라이제이션은 지금 당장 도입하기 어렵게 돼있더라도 개도국들의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계속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