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국가들의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금리가 제로 혹은 마이너스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증시와 경기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짧은 기간안에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금융과 실물부문이 동시에 위축되면서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 특히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의 재정사정이 여의치 않은 점을 감안하면 정책적으로도 무력화 단계에 처할 소지가 높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국제실질금리 동향 =올들어 선진국들의 계속된 금리인하로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있다. 20일 현재 미국과 일본의 금리(3개월 만기)는 각각 3.7%, 0.05%까지 떨어졌다. 독일 등 유로랜드의 단기금리도 4% 안팎까지 낮아졌다. 반면 물가는 오르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3.6% 올라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 유로 12개 회원국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4%에 달해 9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선진국의 평균 물가상승률을 93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2.8%로 추정했다. 20일 거래량을 가중평균한 선진국 금리(단기금리)가 2.9%인 점을 감안하면 국제금리는 제로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 어떤 부작용이 우려되나 =올들어 각국이 잇따라 금리를 내렸으나 침체된 증시와 경기회복에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만큼 부작용이 우려된다. 무엇보다 금융과 실물부문이 동시에 위축되는 악순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주식에 대한 투자매력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처럼 세계 증시가 지속적으로 침체에 빠져 있을 경우 시중자금이 단기부동화되면서 제도금융권에서 이탈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약화와 도덕적 해이현상도 우려된다. 현재 일본을 비롯 구조조정이 시급한 국가들이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리부담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최근 실질금리가 제로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채산성 개선을 통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 측면에서는 돈을 쓸 곳에 제대로 못쓰게 됨에 따라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결국 구조조정이 부진하고 도덕적 해이현상이 나타난다면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은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정책적으로 무력화 단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제로금리에 따라 금리인하 여지가 줄어든 상태에서 현재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경기부양책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재정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선진국 통화정책 어떻게 변할까 =실질금리 향방과 궁지에 몰린 선진국 통화정책에 숨통을 터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경기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올들어 단기간에 실질금리가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역자산 효과(주가하락→자산소득 감소→소비위축→경기둔화)에 따라 경기가 급락한 반면 물가는 높은 유가와 농산물 가격으로 공급측면에서 인플레 요인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만약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올들어 단행한 금리인하로 풀린 통화가 인플레 압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경기부양과 물가안정간에 정책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플레가 다소 늦어질 수 있으나 선진국의 통화정책은 곧바로 금리인상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기관들이 올 하반기 이후 세계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V'자형보다는 'U'자형을 보일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